숙의범씨(淑儀范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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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38년(순조 38)~1883년(고종 20) = 46세]. 조선의 25대 왕인 철종(哲宗)의 후궁.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범원식(范元植)이며, 다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철종의 후궁

범숙의(范淑儀)는 궁인(宮人) 출신으로 딸 한 명을 낳았으나 철종 때는 후궁의 첩지를 받지 못하였고, 고종(高宗)이 왕위에 오르고 이 딸이 9세가 되던 1866년(고종 3) 숙의(淑儀)에 봉해졌다.(『고종실록』 3년 2월 13일),[『승정원일기』 고종 3년 2월 13일] 이후 호조로부터 집을 짓는 경비와 생활비를 지급받았다.(『고종실록』 3년 2월 15일),[『승정원일기』 고종 3년 2월 15일] 1872년(고종 9) 절수결(折受結)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범숙의는 기존의 500결에서 550결로 상향 조절되어 받았다.[『승정원일기』 고종 9년 7월 10일],[『승정원일기』 고종 9년 7월 11일]

범숙의는 1883년(고종 20) 12월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고종은 장례와 관련한 모든 용품을 호조에서 지급하도록 지시하였다.(『고종실록』 20년 12월 26일),[『승정원일기』 고종 20년 12월 26일],[『승정원일기』 고종 20년 12월 28일]

묘소와 후손

범숙의의 무덤은 본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었으나, 1969년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85 서삼릉 내 후궁묘역으로 이전하였다. 1970년 서삼릉이 사적 제200호로 지정될 때 함께 지정되었다.

범숙의는 철종과의 사이에서 1녀 영혜옹주(永惠翁主)를 두었다. 철종의 자식들은 모두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영혜옹주만이 유일하게 성장한 자식이었다. 원래는 1866년(고종 3) 영숙옹주(永淑翁主)에 봉해졌으나(『고종실록』 3년 2월 13일),[『일성록』 고종 3년 2월 13일] 곧 영혜옹주(永惠翁主)로 바뀌었다. 1872년(고종 9) 1월 부마 간택을 통해(『고종실록』 9년 1월 26일) 그해 4월 13일 금릉위(錦陵尉)박영효(朴泳孝)와 혼인하였다.(『고종실록』 9년 2월 22일),(『고종실록』 9년 2월 22일),(『고종실록』 9년 4월 13일) 그러나 영혜옹주는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4일 세상을 떠났다.(『고종실록』 9년 7월 4일)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지두환, 『철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