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보태평(保太平)」, 「정대업(定大業)」, 「발상(發祥)」,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豊亨)」, 「봉황음(鳳凰吟)」, 「만전춘(滿殿春)」 등 세종(世宗) 때 만든 음악의 악보.

개설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는 『세종실록(世宗實錄)』 권136~권147권에 실려 있는 악보로, 원명은 『세종장헌대왕실록악보(世宗莊憲大王實錄樂譜)』이다. 이 악보는 1행 32정간(井間)으로 되어 있고, 그 정간은 시간 단위를 표시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동양 최고(最古)의 유량악보(有量樂譜)이며, 서양의 악보보다는 약 2백년 늦다. 이 악보의 1행 32정간이 세조(世祖)에 의하여 1행 16정간 2행으로 개서(改書)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16정간이 대부분 20정간으로 변하여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세종의 정간보는 기보법 사상 획기적인 것이었다. 『세종실록』 악보에는 「회례악(會禮樂)」, 「제례악(祭禮樂)」, 「보태평」, 「정대업」, 「발상」, 「봉래의(鳳來儀)」, 「전인자(前引子)」,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후인자(後引子)」, 「봉황음」, 「만전춘」 기타 종묘사직 등의 제례악이 실려 있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 초기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따라 예악(禮樂)을 국시(國是)로 삼았다. 정도전(鄭道傳) 등은 건국과 더불어 많은 조선의 창업송가(創業頌歌)를 지었으나, 악곡은 고려조의 음악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차츰 제도가 정비되고 유교가 대흥한 세종 때에 이르러 전조(前朝)의 음악을 많이 개산(改刪)하였다. 세종은 궁중 의식에서 조선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기 위해 향악(鄕樂)과 고취악(鼓吹樂)을 바탕으로 신악(新樂), 즉 ‘새 음악’을 창제했다. 이때 만든 신악의 악보는 정간보(井間譜) 형식을 취했다. 정간보는 한 칸(□)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나눠 각 부분에 음(音)의 이름을 적어 넣어 음의 높이와 길이를 동시에 표시한 악보이다. 음길이가 동일한 4음 1구로 되어 있는 아악(雅樂)과 달리 불규칙적인 시가를 가진 향악을 기록하는 것에 매우 효율적이어서, 현재까지도 궁중 및 민간에서 전승된 음악을 표기하는 데 가장 많이 활용된다. 또 세종은 박연(朴堧)을 시켜 아악을 정비하고, 율관과 악기를 제작하였으며, 「보태평」, 「정대업」을 만들고 「여민락」, 「치화평」 등을 제정하였으며, 유량악보인 「정간보」를 만들도록 하여 『세종실록』에도 실었다.

『세종실록악보』에 수록된 음악들은 아악과 신악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아악은 주희(朱熹)의 『의례시악(儀禮詩樂)』과 임우(林宇)의 『석전악보(釋奠樂譜)』에 근거하여 지었으며, 신악은 전해져 내려오는 고취악과 향악에 의거하여 제작하였다. 악보 편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유사눌(柳思訥)이 작성한 『아악보(雅樂譜)』 서(序)에 실려 있다.

세조(世祖)는 부왕(父王)의 음악 사업을 이어받아,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에 쓰게 하여 오늘날까지 전하게 하였으며, 「정간보」를 개량하고, 「오음약보(五音略譜)」를 내어 『세조실록』 악보에 실었다. 조선 전기의 음악정비 제작 사업은 성종(成宗) 때까지 계속되었고, 특히 성현(成俔)이 찬술한 『악학궤범(樂學軌範)』이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독립한 종합 악서(樂書)가 나왔다. 연산군(燕山君)의 폭정(暴政)과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을 거치는 동안에 조선 초기까지 전하던 삼국시대 및 고려음악은 소멸되었고, 당악(唐樂)은 쇠퇴하여 향악화 되었으며, 새로운 향악곡이 생겨 조선 후기 음악으로 바뀌게 된다.

구성/내용

『세종실록악보』는 『세종실록』 권136·137, 권140~147에 아악(雅樂)과 신악(新樂)으로 양분하여 수록되어 있다. 세종 때의 음악정리사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서문은 예문관 대제학유사눌(柳思訥)이 썼다.

세종 때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 『치화평보(致和平譜)』가 5권, 『취풍형보(醉豊亨譜)』와 『여민악보(與民樂譜)』가 각각 2권, 『정대업보(定大業譜)』와 『보태평보(保太平譜)』가 각각 1권, 『발상보(發祥譜)』가 1권, 그리고 『시용속악보(時用俗樂譜)』가 1권이 있었다고 한다.(『세종실록』 29년 6월 4일) 이들 중에서 『시용속악보』에는 「환환곡(桓桓曲)」을 비롯하여 여러 시용(時用) 속악(俗樂)이 수록되어 있었으나, 『세종실록악보』에는 이중에서 「봉황음」과 「만전춘」 2곡만이 권147에 수록되어 있다.

아악·신악 모두 세종 때의 음악정비사업과 악기선별, 율관(律管) 제작, 구기(矩 : 율관의 척도단위) 산출과 경석(磬石 : 악기의 표준 그릇) 발견 등의 업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히 신악은 종묘제악에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재래의 고취악인 「수보록(受寶籙)」·「몽금척(夢金尺)」·「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향악」 등을 기초로 하여, 조종무공문덕(祖宗武功文德)을 송영(頌詠)한 무악(舞樂)인 「정대업」·「보태평」과 「발상」·「봉래의」·「여민락」·「치화평」·「취풍형」 등의 새로운 악곡을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곡들은 실제로 종묘제악에서 연주되지는 못했다.

악보를 수록함에 있어서는 12율의 본질을 구명하고자 주희가 작성한 『의례시악』을 비롯하여, 『풍아(風雅)』 13편과 『지정조격(至正條格)』·『석존악보(釋尊樂譜)』·『율려신서(律呂新書)』 등을 참조했다. 음률·이보법은 음의 고저를 표시할 때 중국의 12율보를 참고했고, 음의 장단을 기록할 때는 유량악보를 참고했다.

『세종장헌대왕실록』에 실려 있는 악보는 다음과 같다.

권136: 아악보서(雅樂譜序)·악보목록(樂譜目錄)·아악보(雅樂譜)·조회악(朝會樂)

권137: 제사악(祭祀樂)·『의례경전통해』 시악·원조임우대성악보(元朝林宇大成樂譜)

권138: 정대업지무악보(定大業之舞樂譜)·보태평지무악보(保太平之舞樂譜)

권139: 발상지무악보(發祥之舞樂譜) : 조광(照光)·순우(純佑)·창부(昌符)·영경(靈慶)·신계(神啓)ㆍ현휴(顯休)·정희(禎禧)·강보(降寶)·응명(凝命)·가서(嘉瑞)

권140: 봉래의(鳳來儀)·전인자(前引子)·여민락보(與民樂譜)·치화평(致和平) 상(上)

권141: 치화평 중(中)

권142: 치화평 하상(下上)

권143: 치화평 하중(下中)

권144: 치화평 하하(下下)

권145: 취풍형(醉豊亨) 상(上)·취풍형 하(下)

권146: 봉황음(鳳凰吟)·만전춘(滿殿春)

권147: 사직악장(社稷樂章)·종묘악장(宗廟樂章)·풍운뢰우산천성황악장(風雲雷雨山川城隍樂章)· 선농악장(先農樂章)·선잠악장(先蠶樂章)·우사악장(雩祀樂章)·문선왕석전악장(文宣王釋奠樂章)·둑제악장(纛祭樂章)·문소전악장(文昭殿樂章)·용비어천가서(龍飛御天歌序)·용비어천가 125장

의의와 평가

『세종실록악보』는 음악사에서 매우 높은 가치와 위상을 차지한다. 현재 실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악보라는 점, 전래되는 고취악과 향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새롭게 창안된 신악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더욱이 이를 통해 조선 전기와 그 이전 시대의 음악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봉래의」, 즉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등은 모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가악(歌樂)이었으므로, 그 실제 연주 모습을 짐작할 수도 있다. 또한 중국에 남아있는 고악보(古樂譜)들과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악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김세중, 「『세종실록』 악보의 치화평1ㆍ2ㆍ3에 대한 고찰 - 박과 장구의 장단 구조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33, 한국국악학회, 2003.
  • 문숙희, 「『세종실록악보』 봉래의(鳳來儀)의 음악적 구성」, 『한국공연문화연구』 27, 한국공연문화학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