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위사(宣慰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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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각지에 파견되어 중국·일본·유구(琉球)에서 온 사신을 위로하던 임시 관직.

내용

원래 고려후기 원으로부터 전래된 선위사(宣慰使)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파견되어 해당 지역을 위무하는 임시 관직이었고, 조선초기에도 같은 목적으로 변경 지방이나 여진 등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점차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사신이 오고 가는 길에 파견되어 노고를 위로하는 임시 관직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국 사신에 대해서는 원접사와 별도로 선위사를 파견하였는데, 초기에는 3곳에만 보내다가, 태종대부터 의주·안주·평양·황주·개성부의 5곳으로 늘렸다. 후기에는 이전에 별선위사(別宣慰使)가 파견되었던 정주(定州)를 추가하여 6곳에 파견하였다. 요동도사가 중국 사신을 호송하여 따라올 경우에는 따로 선위사를 보냈고, 일본국사(日本國使)에 대해서는 선위사와 통사(通事), 유구국사에 대해서는 선위사만 보내 맞이하고 전송하였다. 중국 사신에 대한 선위사는 종2품 가선대부로 임명되는 것이 원칙이나. 조선초기에는 환관 등이 사신으로 올 경우 정3품 승지를 별선위사로 추가하여 보내기도 하였다. 요동도사와 일본국·유구국 사신에 대한 선위사는 정3품으로 임명하였다.

중국 사신에 대한 선위사는 1521년(중종 16)에, ‘선위(宣慰)’라는 말이 황제가 보낸 사신을 존경하는 뜻이 아니라고 하여 영위사(迎慰使)로 변경하였으나, 인조반정 이후 병자호란 전까지의 후금의 사신에 대해서는 선위사를 보냈다. 요동도사와 일본국사에 대한 선위사는 인조대 이후 파견되지 않았다. 중국 사신의 경우, 입국할 때는 원접사, 출국할 때는 반송사를 일단 파견한 후, 그 보고에 따라 일정을 맞추어 각 지점에 선위사를 파견하였다.

용례

孝連啓 使臣出來以事干野人秘不發. 傳于承政院曰 今來使臣支待一依陳嘉猷王軏例 遂以刑曹判書朴元亨爲遠接使 又遣宣慰使中樞院使朴薑于義州 知中樞院事金世敏于平壤 漢城府尹李允孫于安州 中樞院事李邊于黃州 仁壽府尹沈決于開城府 別宣慰使左承旨李克堪于平安道 右承旨成任于開城府(『세조실록』 6년 2월 4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 『대전회통(大典會通)』
  • 『통문관지(通文館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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