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석사(禪石寺)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세조의 태봉과 세종 왕자의 태실을 수호한, 경상도 성주의 사찰.

개설

선석사(禪石寺)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서진산(棲鎭山, [禪石山])에 있는 절이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고 신광사(神光寺)라 하였다고 하며, 고려말 나옹혜근(懶翁惠勤)이 주지로 부임하여 선석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시대에 세조의 태봉(胎封)과 세종 왕자들의 태실(胎室) 총 19기를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사격(寺格)이 상승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가장 큰 사찰로 발전하였다.

내용 및 변천

(1) 연원

경상북도 성주군서진산(棲鎭山)의 선석사는 692년(신라 효소왕 1)에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현 위치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절을 건립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다.

(2) 고려시대

고려말인 1361년(고려 공민왕 10) 나옹혜근이 신광사의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자리에 옮겨지었다. 당시 절을 옮기려 터를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고 하여, 터를 닦는다는 뜻을 가진 ‘선(禪)’ 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禪石寺)로 고쳤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선석사 뒤편에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이 자리하게 되면서 태실의 수호 사찰이 되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와 공주가 태어나면 전국의 명당자리를 선별하여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거쳐 아기의 태(胎)를 봉안하는 태실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태실이 위치한 고을은 전에 비해서 그 격(格)이 상승되기 마련이었다. 태실의 주인공이 왕위에 즉위하면 태봉(胎封)으로 봉해지며 다양한 시설물이 추가로 조성되었다.

선석산 인근의 세종대왕자태실은 1438~1442년(세종 20~24) 사이에 조성되었고,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적서(嫡庶) 18왕자의 태실과 세종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총 19기였다. 이 가운데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의 태실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에 즉위한 이후 태봉(胎封)으로 격상되었다(『정조실록』 8년 9월 15일). 현재 19기 중 14실이 조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조의 즉위를 반대한 금성대군, 안평대군, 영풍군, 한남군, 화의군의 태실은 석물이 파괴되고 기단석만 남아 있다. 선석사는 세조의 태봉을 비롯하여 여러 왕자의 태실을 수호한 사찰로 지정된 까닭에 사격(寺格)은 전에 비해 매우 높아졌을 것이다.

선석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1684년(숙종 10)에 은현, 혜묵, 나은 등이 중창하였고, 1725년(영조 1)에 절을 옛터인 신광사 자리로 옮겼다. 1804년(순조 4) 동파서윤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 등을 지었다. 이후의 화재로 영조의 어필을 하사받아 보관한 어필각(御筆閣)이 소실되었다.

(4) 현대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태장전, 종각, 명부전, 칠성각, 정법료,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최근에는 대웅전 뒤편에 미륵부처를 조성하였다. 현재 선석사는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자리하고 있으며 매년 산사 음악회를 여는 등 지역 주민의 문화 공간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선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팔공총림(八公叢林)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참고문헌

  • 『가람고(伽藍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