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船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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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장만하거나 수리하는 데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한 계, 또는 세곡을 운송하는 경강선인의 공계.

개설

조선후기에 조운에 참가한 경강선(京江船)을 조직하고 통솔하던 방법을 작대제(作隊制)라고 하였다. 경강선을 선혜청(宣惠廳) 대장에 기록하여 선주들의 부정을 방지하는 한편 관리들의 수탈을 제거하여 경강선인의 활동을 보장하고 세곡의 운송을 원활히 하고자 만든 방안이었다. 작대제 하에서 세곡을 운반하던 선박은 선대(船隊)를 이루어 세곡 운송용역에 참여하였다. 이때 경강선인들이 세곡을 독점적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공계의 형태로 조직된 것이 선계(船契)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작대제는 17세기 말엽부터 세곡 운송을 주도했던 지방의 지토선(地土船) 기능이 약화되면서 그 대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지토선을 대체할 운송 수단으로 경강선을 주목하였다. 경강선 가운데 적재 능력이 큰 선박을 선발하여 선안(船案)을 작성하고 돌아가면서 해마다 동원하며, 이에 입각하여 선가(船價)를 지불해서 선주가 생업을 이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경강선이 세곡 운송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부 선인들이 적재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당국에 로비를 통해 참여함으로써 해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 일방적으로 지정된 경강선에 세곡을 실어야 하고 과중한 선가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납세자들이 반발하기도 하였다. 이에 1785년(정조 9) 작대사목(作隊事目)이 제정되어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을 개선하려 하였다. 주요 내용은 선계를 조직하고 선계에서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운송하도록 하는 것이었다(『정조실록』 9년 1월 21일).

조직 및 담당 직무

경강선인들로 하여금 선계를 만들고 두목을 정하도록 하였으며, 이렇게 조직된 선계에서 선주·사공의 선안을 작성·보고하면 선혜청에서 이를 감독하였다. 선계는 매년(해마다) 정월에 선혜청에서 체문(帖文)을 받아 각 고을에 윤번제로 배를 보내고, 각 고을은 배가 도착한 월일을 선혜청에 보고하여 기한을 어기는 경우 선주를 처벌하였다.

변천

경강선은 왕의 능행(陵行) 때 배로 만든 다리, 즉 주교(舟橋)에도 동원되었다. 왕이 능행을 위하여 한강을 건널 때에는 여러 척의 배가 한강을 왕복하며 왕과 수행원들을 강 건너로 옮겨 주었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덜고자 정조대에 배를 이어 다리를 만들고 한강을 건넜는데, 이때 배로 만든 임시 다리를 주교라고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는 주교사(舟橋司)를 설치하고(『정조실록』 13년 12월 4일) 주교절목(舟橋節目)을 정하였다(『정조실록』 17년 1월 11일). 주교절목에 따르면, 주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강(京江)의 대선(大船) 80척 가운데 36척을 주축으로 하여, 대선을 좌우로 보호하는 선박 400~500척이 필요하였다. 그 대부분이 경강의 사선(私船)이었다. 이때 선주들 중에서 근실하고 부유한 자를 가려서 선계를 만들게 하고 그들이 사공을 잘 통솔하여 일을 잘 거행하도록 하였다. 대신 이들에게는 전라도·충청도 지방의 세곡 운송권과 퇴역 병선의 인수권까지 독점적으로 부여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탁지지(度支志)』
  • 『만기요람(萬機要覽)』
  • 강만길,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고려대학교출판부, 1974.
  • 최완기, 『조선 후기 선운업사 연구』, 일조각, 1989.
  • 이현종, 「주교사 설치와 변천」, 『향토서울』 36, 197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