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반(夕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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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에서 저녁에 끼니로 먹는 밥을 일컫던 말.

개설

조선시대 궁중에서 평상시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朝飯), 조반(朝飯)과 석반(夕飯) 두 번의 수라상(水剌床), 점심 때 차리는 낮것상[點心], 밤중에 내는 야참[夜食]까지 5번의 식사를 올렸다. 영조는 검박(儉朴)하여 오식(午食)과 야식(夜食)을 생략하여 하루 3회로 하였다고 한다. 궁중에서의 평상시 저녁 식사인 석수라는 대개 오후 5시경에 올렸다. 왕이나 왕비에게 올리는 저녁밥은 석수라라고 하고, 이하 왕족의 저녁밥은 석반이라고 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순종과 순종비인 윤비를 모시던 지밀나인인 김명길(金命吉) 상궁이 쓴 『낙선재 주변』에는 저녁수라는 5시경이고, 수라상은 원반·소원반·책상반 등 3개의 상에 차리며, 은그릇에 담아 올렸다. 책상반은 곁상을 말한다. 찬은 탕조치(장조치·젓국조치)·장산적·삼합장과 찜·구이·산적·튀각·편육·숙채·생채·젓갈·포자반의 12첩상을 올리고, 별찬으로 육회·어회·어채·수란을 곁들이기도 했다. 12첩상이지만 빈 보시기·은공접시·토구 등을 모두 합치면 그릇수가 30여 개나 되고, 수저도 5벌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한편 다른 왕족의 석반에 대한 문헌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변천

『조선왕조실록』에는 일상적인 석반을 드셨다는 기사는 많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석반을 대접한 기사가 많다(『태종실록』 8년 4월 2일)(『태종실록』 8년 4월 2일). 1777년(정조 1) 모화관의 막차(幕次)에 나아가 다례를 행하고 나서 칙사를 전송한 뒤 창덕궁으로 환가(還駕)하였고, 금년에는 칙사의 사행이 부음을 전하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나례를 설행하지 않았고 포진(鋪陳)과 금욕(禽褥)도 모두 흰색을 썼다. 연로에는 화색(華色)을 썼고, 다례 때에는 소선(素膳)을 썼으며, 아침저녁 식사 때에는 육선(肉膳)을 썼고, 연향(宴響)은 아울러 감하였다(『정조실록』 1년 3월 10일). 고종대에는 고온포(古溫浦)에 풍랑을 피해 정박한 일본 선박에 저녁을 공급해 주기도 하였다(『고종실록』 14년 10월 16일).

참고문헌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