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악사(西岳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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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에 위치한 관왕묘 수호 사찰.

개설

서악사(西岳寺)는 신라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에 안동의 비보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1598년(선조 31)에 명나라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설호신(薛虎臣)이 안동도호부 성내에 관왕묘(關王廟)를 세웠는데, 1606년(선조 39)에 안동 유림들의 요청에 의해 서악사 옆으로 옮긴 이후 서악사는 관왕묘 수호 사찰이 되었다.

내용 및 특징

서악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 경덕중학교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경문왕 때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창건하여 운대사(雲臺寺)라 불렀고, 후에 서악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악사기(西岳史記)」, 「태화산운대사상량기문(太華山雲臺寺上樑記文)」, 「극락전삼존불상개금기(極樂殿三尊佛像改金記)」에도 사찰의 내력이 자세하지 않아서 구전으로 그 내력이 전해질 뿐이다.

1608년에 편찬된 『영가지(永嘉誌)』 불우조(佛宇條)에서는 부(府)의 서쪽 5리 지점에 있으며 본부 사악(四岳)의 하나로서 지역을 비보(裨補)하는 사찰로, 석불이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고 하였다.

서악사는 관왕묘와 관련하여 종종 기록에 등장한다. 관왕묘는 관우(關羽) 사당을 말하며, 1598년(선조 31)에 서울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南關王廟)를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안동, 성주, 남원 등지에 건립하였다. 그중에 안동의 관왕묘는 명나라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설호신(薛虎臣)이 1598년에 세운 것이다. 처음에 안동도호부 성내의 북산(北山) 정상에 세웠는데, 안동 유림(儒林)들이 향교(鄕校)의 문묘(文廟)와 대치되는 위치에 있는 관왕묘를 옮길 것을 요청하여 1606년(선조 39)에 서악사 옆의 동대(東臺)로 옮겨 세웠다(『숙종실록』 37년 1월 3일).

그런데 숙종대에 안동부사로 있던 여필용(呂必容)이 쓴 「관왕묘중수기문」에 따르면, 당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관왕묘를 사찰 옆에 두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논이 있어서 조정으로부터 관왕묘의 형편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서악사에 대해 서술하기를 "서악사는 본래 큰 절이 아니고 소상(塑像)도 없으며 다만 승려 약간이 살고 있어 구애될 게 없을 뿐더러 수호함에 편함이 있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는 사찰에서 관왕묘를 관리하는 편리함을 인정받아 관왕묘 수호 사찰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747년(영조 24)에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權紀 撰, 『국역 영가지(永嘉誌)』, 안동군, 1991.
  • 김명자, 「안동의 관왕묘를 통해 본 지역사회의 동향」, 『한국민속학』42, 2005.
  • 안동민속박물관 편, 『안동의 사찰』,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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