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上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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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3일을 이르는 말.

개설

삼짇날 혹은 답청절(踏靑節)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청명(淸名)에 답청절을 지내지만 한국은 상사(上巳)에 지낸다. 이날은 양의 수가 두 번 겹친 5월 5일의 단오와, 9월 9일의 중양절과 함께 길일로 여겼다. 상사에는 수계(修禊)를 하고, 성균관 유생들이 절제(節製)를 치렀다. 또한 선잠단(先蠶壇)에서 선잠제를 지냈다. 조선중엽부터는 문중을 중심으로 시제를 지냈다. 봄기운이 만연해 산과 들로 꽃놀이를 가거나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원래 상사는 음력 3월에 첫 번째 맞는 사일(巳日)을 이르는 것이었으나, 위(魏)나라 이후 삼월 삼짇날을 이르게 되었다. 기원전부터 이날을 풍속으로 지냈으며, 동진(東晉)이 강남(江南)으로 수도를 이전했을 때에도 상사일의 수계 의식이 여전히 행해졌다). 1562년(명종 17) 홍천민(洪天民)은 수계에 대하여 “신에게 상서롭지 못한 재액을 떨쳐 버리기 위해 물로써 정화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동진시대에는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 등을 비롯한 17인이 참여하였다”고 설명하였다(『명종실록』 17년 2월 25일).

중국에서 이날은 복운(復運)이 거듭되는 길한 날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양의 숫자가 반복되는 복일에는 삼짇날(3월 3일), 단오·중오(5월 5일), 칠석(7월 7일), 중구절·중양절(9월 9일)이 있다. 1413년(태종 13)에 의정부(議政府)에서 금형(禁刑)하는 날을 의논하면서 3월 3일과 5월 5일, 그리고 9월 9일은 휴무하는 것으로 정하였다(『태종실록』 13년 11월 11일). 복일에는 절제를 시행하거나 의금부(義禁府)에 휴무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절제는 인일(人日)·상사·칠석(七夕)·중양(重陽)에 성균관의 유생에게 실시하던 과거로서, 복일 중 인일과 단오를 제외하고 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목욕을 통해 심신을 정결하게 하는 수계의 날로 여겨, 국가에서도 이 행사에 동참하였다. 1488년(성종 19)에는 상사의 수계가 공자(孔子) 문하[孔門]의 유풍이라 하여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에 주악을 내려 봄의 경치를 즐기게[賞春] 하였다(『성종실록』 19년 3월 2일).

상사에는 국가 제사 중 그 규모가 중사(中祀)에 해당하는 선잠제(先蠶祭)를 지낸다. 이 제사는 왕후가 직접 친잠하는 친잠례(親蠶禮)로, 선잠단에서 행해졌다. (『영조실록』 43년 1월 22일). 간혹 선잠례 일정은 뽕잎의 성장과 왕실의 흉사가 있을 때에는 변경되었는데, 상사일이 아닌 곡우(穀雨) 후의 상사일이나 길한 날을 택해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1476년(성종 7) 3월에 뽕잎이 피지 않아, 길한 날을 다시 정해 제를 올리자고 청한 일이 있고(『성종실록』 7년 9월 25일), 1752년(영조 28)에는 세자빈 심씨(沈氏)의 빈실(殯室)이 마련되는 흉례(凶禮)로 인해 선잠제가 상사에서 중사(仲巳)로 미뤄진 일이 있었다(『영조실록』 28년 3월 6일).

절차 및 내용

상사에 행해진 친잠례는 실제 뽕잎을 따는 과정이 하나의 의식으로 진행된다. 1476년(성종 7) 예조(禮曹)에서 침잠의 절목을 아뢴 내용에 의하면, 친잠례는 『통전(通典)』에 따라 행해졌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황후가 채상위(採桑位)에 다다르면 상공(尙功)이 금 갈고리를 들고, 사제(司製)는 광주리를 들고 뽕잎을 딴다. 이때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 중 1품 1명씩과 2품과 3품 각 1명씩이 여시중과 함께 이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조선초기에는 기제사(忌祭祀)만을 중히 여겨 시제(時祭)는 관심 밖이었다가 조선중엽에 들어 유현(儒賢)들이 배출되면서 삼짇날과 중양절에 시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삼짇날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여 반드시 이날은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삼짇날 나비를 보며 점을 치기도 한다. 만약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소원이 이루어질 길조이고, 흰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부모상을 당하게 될 흉조라는 속신이 전해진다. 3월 3일에는 진달래꽃과 찹쌀가루로 화전(花煎)을 부치거나, 녹두가루 면을 오미자국에 넣은 화면(花麵)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동문선(東文選)』
  • 『무명자집(無名子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통전(通典)』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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