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조발(常例調發)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471년(성종 2년)의 역민식 규정대로 8결의 경작지에서 1명의 역부를 낼 수 있는 요역 종목으로 지정된 분야에서 요역을 징발하는 일.

내용

1471년(성종 2년)에 제정된 역민식(役民式)에서, 요역제 운영에 있어서 징발의 기준, 징발의 체계 등을 규정한 바 있다. 모든 수세전(收稅田) 8결마다 1명의 역부를 징발해서 사역하는 방식을 상례조발(常例調發)로 규정하였다. 또 관찰사는 공역(功役)의 크고 작음을 헤아려 순환해서 징발할 것, 역사의 규모가 커서 별례조발(別例調發)이 필요할 경우에는 6결에서 역부를 차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상례조발의 요역 종목에는 서울에서 얼음을 저장하는 일, 금(金)을 캐는 일, 참(站)·관(館)을 수리하는 일, 목장을 쌓는 일, 공탄(貢炭)을 땅에 묻거나 교량을 만드는 일, 교초(郊草)를 베는 일, 철물을 취련(吹鍊)하는 일, 목장에서 말을 몰고 다니는 일, 예장(禮葬)에서 무덤을 만드는 일 등이 포함되었다.

전세·공납을 중심으로 한 현물 조세는, 그 조달·상납의 과정에서 요역과 관련되었다. 예컨대 전세미의 수송은 요역의 한 종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역은 현물 상납의 조세제도를 보완하는 기능도 아울러 담당하였다. 특히 요역은 공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공납은 지방의 관부에서 왕실 및 중앙 각사에 바치는 현물 조세로서, 그 일부는 군현의 주민을 사역하는 것을 통해서 조달되었다. 이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관부의 관계에서는 공납이지만, 지방관부와 민호의 관계에서는 무상의 강제노동인 요역 징발의 방식이 적용되고 있었다. 특히 정해진 수량의 정례적인 공납·진상의 물종이 소속 군현민의 관례적인 요역 부담에 의해서 조달되는 경우, 이러한 요역은 상시잡역(常時雜役)·상시요역(常時徭役)·연례요역(年例徭役)·상례요부(常例徭賦) 등으로 불리었다. 요역에서의 상례조발은 이 같은 상시잡역에서의 요역 징발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잡다한 요역 부담 중에서 비교적 정기·정량적인 성격을 띠는 요역이었다.

용례

下役民式于戶曹 一應收稅田 每八結出一夫 觀察使量功役多少 循環調發 若事鉅不得已加調發 則六結出一夫 須啓聞乃行 其京藏氷 採金 修站館 築牧場 埋貢炭 造橋梁 刈郊草 鐵物吹鍊 牧場驅馬 禮葬造墓 爲常例調發 築城 運米 天使轎夫 新築牧場 波吾達 焰硝 輸木 石築 堤堰 山臺 採葛 石灰燔造 爲別例調發 (『성종실록』 2년 3월 19일)

참고문헌

  • 강제훈, 「朝鮮初期 徭役制에 대한 재검토」, 『歷史學報』 145, 1995.
  • 김종철, 「朝鮮初期 徭役賦課方式의 推移와 役民式의 確立」, 『歷史敎育』 51, 1992.
  • 윤용출, 「15·16세기의 徭役制」, 『釜大史學』 10, 1986.
  • 有井智德, 「李朝初期の徭役」, 『朝鮮學報』 30·31, 196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