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람사(上藍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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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성리학의 대가 주희가 머물렀던 중국 강서성 남창시의 사찰.

개설

상람사(上藍寺)는 남조 양나라 때 창건되었으며, 개원사(開元寺), 능인사(能仁寺), 상란사(上蘭寺), 승천사(承天寺), 영녕사(永寧寺), 우민사(佑民寺), 우청사(佑淸寺) 등으로 사찰 이름이 바뀌었다. 신라시대 남종선(南宗禪)을 전래한 도의(道義)가 이 사찰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 송나라 성리학(性理學)의 대가 주희(朱熹)가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하다.

내용 및 특징

상람사는 송나라 때 상란사(上蘭寺)라고 불렸던 사찰로 추정된다. ‘상람사(上藍寺)’와 ‘상란사(上蘭寺)’의 중국 발음이 같아서 구분 없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우민사(佑民寺)로 불리고 있으며,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 팔일공원(八一公園)의 북쪽에 소재해 있다.

이 사찰은 남조 양(梁)나라 천감(天監) 연간(502~519) 때 건립되었는데,본래 예장왕(豫章王)울종(蔚綜)의 스승인 갈어단(葛魚單)이 기부한 주택이었다. 처음 사명(寺名)은 상란사였지만 예장왕이 큰 불상을 봉안한 후 대불사(大佛寺)로 개명되었다. 그 후 당나라 때 다시 개원사(開元寺)로 사명을 바꾸었다. 이 사찰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769년(신라 혜공왕 5)에 선종의 고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머무르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부터이다. 당시 사방에서 학승(學僧)들이 몰려들어 강남(江南) 지역 불교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원사에는 신라에서 온 유학승(留學僧)도 많이 머물며 공부하였다. 개원(開元) 연간(713~741)에 신라 승려 김대비(金大悲)가 머물렀고,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조사인 도의(道義)와 실상산문(實相山門)의 조사인 홍척(洪陟)이 개원사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수학하였다.

그 후 이 사찰은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면서 승천사, 능인사, 영녕사 등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청나라 순치(順治) 연간(1644~1661)에 사원은 우청사(佑淸寺)로 개명되었다가 1929년에 지금의 우민사로 바뀌었다.

우민사는 1957년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護單位)로 선정되었고, 1986년 이래 점차 재건 공사를 시행하여 1991년 초에 대웅보전(大雄宝殿), 약사전(藥師殿), 종루(鐘樓) 등이 차례로 준공되었다.

송나라 성리학의 대가 주희가 상람사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주희가 유공보(劉共甫)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람사에 머물고 있으면서 황제의 조서 가운데 신료들을 꾸짖는 말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한밤중에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상소문을 썼다고 한다(『영조실록』 40년 7월 6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