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전(三淸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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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삼청성신(三淸星辰)에 대한 초례를 지내던 소격서에 있었던 도교 신전의 하나.

개설

삼청(三淸)은 도교에서 숭배하는 하늘 위의 세계인 상청(上淸)·태청(太淸)·옥청(玉淸)을 합쳐 부르는 말로 삼청전(三淸殿)은 삼청의 별[星辰]을 받드는 곳이다. 삼청전은 소격서(昭格署) 안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기우제, 기한제 등 천재지변을 기양하고 국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초례가 거행되었다.

위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소격서가 북부 진장방(鎭長坊)에 있었다고 하니 삼청전도 이곳에 자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변천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따르면 소격서에는 삼청전, 태일전, 제단(祭壇)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삼청전은 소격서, 즉 소격전이 설치되었던 1396년(태조 5)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은 성종 때에 건립되었다. 1471년(성종 10)에 사헌부 대사헌한치형(韓致亨) 등이 상소하여, 삼청전과 의경묘(懿敬廟) 공사를 벌인 일을 언급하였고, 이듬해에 삼청전조성도감(三淸殿造成都監)의 당상낭청(堂上郞廳)에게 술과 음악을 내려 주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삼청전은 성종 때에 소격서 안에 새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청전은 소격서가 폐지되던 1518년(중종 13)에 함께 혁파되었고, 후에 다시 설치되었다가 임진왜란 뒤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형태

『용재총화』에 따르면 소격서의 삼청전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당제군(梓撞諸君) 등 10여 위(位)를 제사지내는데 모두 남자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신위를 모신 것으로 보아 상당한 규모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건물의 형태나 배치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현황

삼청전은 1518년(중종 13)에 소격서가 폐지되면서 함께 폐지되었다가 얼마 후에 소격서가 복구되었을 때 삼청전도 같이 복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소격서는 완전히 혁파되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용재총화(慵齋叢話)』
  • 김철웅, 『한국중세의 길례(吉禮)와 잡사(雜祀)』, 경인문화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