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신전(三功臣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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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개국·정사·좌명공신에게 분급한 토지.

개설

조선은 개국 과정에서 몇 차례 공신을 선정하였고, 이후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두 차례 공신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모두 공신전(功臣田)을 분급하여 경제적인 예우를 해 주었다. 삼공신전은 그러한 공신전 중에서도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공신에게 분급한 공신전을 가리켰다. 이들 공신은 여타의 공신에 비해 더욱 우대받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분급받은 삼공신전도 여타의 공신전이나 과전(科田)에 비해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토지였다.

내용 및 특징

공신전은 선정된 공신의 등급에 따라 수여되었는데, 5결 내지 10결로 묶인 자정(字丁) 단위로 분급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온(趙溫)의 『공신녹권(功臣錄券)』에는 조온이 2등 개국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수여받은 150결 토지의 목록이 남아 있어, 그가 몇 개 군에 걸친 토지를 분급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토지 분급의 형태는 새로운 수조지(收租地)를 분급받는 경우도 있고, 혹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에 대해 수조권을 받아 결과적으로 면조지(免租地)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태종대에 이르러 1결에서 수조하는 30두의 전세(田稅)에 대해 다시 2두의 세금을 국가에 내도록 하였는데, 이는 삼공신전을 포함한 사전에 모두 부과되는 규정이었다.

변천

공신전의 상속 여부는 국초에 조정의 논의를 거쳐 결정되었다. 회군공신이나 원종공신의 경우 1대에 한하여 상속할 수 있었던 반면 삼공신전은 영구히 자손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3년 9월 3일). 삼공신 외에 공신 선정이 몇 차례 더 이루어진 후 만들어진 『경국대전』에서는 공신전 상속은 양첩(良妾) 소생 자손에게까지는 그대로 주되, 천첩(賤妾) 소생의 자손에게 승계될 때에는 제사 비용을 배려한 제전(祭田) 30결만 주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적실 자손 중 승중자(承重子)에게는 1/3을 더 주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대가 내려갈수록 다수의 자손에게 나뉘어 상속되었기 때문에 그 규모는 영세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자손들이 특정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토지를 몰수당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세종 연간에 범죄로 인한 삼공신전의 몰수량은 약 2,400결에 이르렀다.

국가에 특별한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사전 중에서도 삼공신전은 특별히 우대 받는 토지였다. 그리하여 사전 확장을 되도록 억제하고 그 규모를 줄이려고 노력하던 조선초의 정책에서도 삼공신전은 비교적 그 혜택을 보장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여러 대에 걸쳐 상속하면서 규모가 영세화되었고, 여러 경로를 통한 국가 환수 조치로 인하여 15세기 중엽 이후 삼공신전의 전체 양은 매우 줄어들었다. 이후 공신전은 세조대 이래 훈구대신들이 분급받는 토지가 중심을 이루었고, 『경국대전』의 규정 또한 이들에게 지급된 공신전을 중심으로 법규가 정비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정두희, 『조선 초기 정치 지배 세력 연구』, 일조각,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