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보(沙河堡)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명대 요동 지역의 방어를 위하여 수축한 성.

개설

명대 요양성(遼陽城) 부총병(副總兵) 관할의 방어 거점이었으며 북경으로 가는 조선 사신들이 주로 이용하던 사행로의 경과지 중의 하나였다. 사신단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말을 먹이며 짐을 정리하는 활동 등을 하였다. 1618년 여진족들이 요동 지역을 넘보면서 사하보 등지에 대한 약탈 기록들이 조선에도 전한다(『광해군일기』 10년 윤4월 12일). 천계 이후 명군이 요동을 잃은 뒤 이 길이 막혔으므로 조선의 사신들은 해로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명칭 유래

사하보의 명칭은 그곳에 흐르는 강의 이름이 사하(沙河)인 데서 유래하였다.

자연 환경

사하보는 동쪽과 서쪽에 사하라고 하는 강물이 있었다. 산해관에서 요동에 이르는 일대 지역이 사토(沙土), 즉 모래가 많기 때문에 강의 이름을 사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곡선생조천기(荷穀先生朝天記)』에 따르면 사하는 가물면 급히 물이 마르고 6월말에는 강물이 불어나곤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명대 요양성 부총병 소속 방위의 거점 성채였다. 명대 요동 지역은 주(州)·현(縣)을 설치하지 않고 오로지 방어를 위한 군영만을 두었다. 방어 체계에 따라 진성(鎮城)·위성(衛城)·소성(所城)·보성(堡城)·역참성(驛站城) 등 크고 작은 성과 해자가 있었다. 1621년(천명 6) 누르하치가 명을 공격하였을 때 항복하여 후금에 편입되었다. 청이 북경을 점령한 후 요양성 방위의 요충지가 되었다. 요양성 수위기(守尉旗) 예하에 속하였다. 팔기 군대가 옮겨옴에 따라 점차 만족과 한족이 서로 뒤섞여 거주하게 되었다.

위치 비정

현재 요녕성 안산시(鞍山市)에 해당한다. 요양시와 서남쪽 53리(약 21㎞) 정도에 이웃하여 위치한다.

참고문헌

  • 『계산기정(薊山紀程)』
  • 『조천록(朝天錄)』
  • 『하곡선생조천기(荷穀先生朝天記)』
  • 최강현, 「됴텬녹」, 『국학자료』 3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979.
  • 劉晶·陳文備, 「論明代遼東“鋪”與“堡”的混同」, 『東北史地』, 吉林省社會科學院, 2013.
  • 孫文良 主編, 『滿族大辭典』, 遼寧大學出版社, 1990.
  • 張德信·松浦章, 「一部硏究中朝關系的重要史料-『朝天錄』評價之一權近『奉使錄』」, 『史學集刊』, 吉林大學, 1999.
  • 張曉明, 「明代鞍山驛路-以 『朝天錄』 中的記載爲中心」, 『鞍山師範學院學報』, 鞍山師范學院,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