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司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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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궁중 연향에서 악장(樂章)을 노래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 가창자.

개설

사창(司唱)은 조선후기 궁중 연향에서 악장에 선율을 붙여 전문적으로 창(唱)을 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女妓) 2인이 짝이 되어 사창을 맡았다. 처음 등장했던 순조대부터 고종대까지는 내연(內宴)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외연(外宴)에서 악장을 노래하는 가자(歌者)와 구별되었다. 궁중 연향 중 내연은 왕비와 왕대비 등의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왕세자빈, 내·외명부가 함께 참여하는 잔치였고, 외연은 왕이 주인공이며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함께하는 잔치였다. 한편 내연과 외연 후에는 그날 밤 왕을 중심으로 야연(夜宴)을 베풀었고, 이튿날에는 전일 수고한 관원들을 위로하는 뜻에서 군신들이 모여 익일회작과 익일야연을 열었다. 대한제국기에는 사창들이 내연뿐 아니라 야연과 익일회작, 익일야연 등에도 참석하여 궁중 잔치의 악장 전문 여성 가창자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내용 및 특징

사창은 궁중 연향에서 악장을 부르는 역할을 담당하는 여성 가수였다. 2명이 짝이 되어 활동하였고, 새 악장을 창할 때마다 사창의 역할을 맡은 이가 바뀌거나 중복 출연하기도 하였다.

사창은 1829년(순조 29) 내연에서부터 나타난다. 1829년(순조 29) 자경전(慈慶殿) 내진찬(內進饌)에서 꽃을 나누어주는 차례가 끝나자 사창이 선창악장을 불렀으며, 연향이 끝날 즈음 후창악장도 노래하였다(『순조실록』 29년 2월 12일). 선창악장을 부른 이의 이름은 효절(孝節)과 옥이(玉伊)였고, 후창악장을 노래한 이는 홍월(紅月)과 현옥(玄玉)이었다. 이들은 모두 여기였다.

1877년(고종 14) 통명전(通明殿) 진찬에서부터는 사창 2인이 혁혁오장(赫赫五章), 선창악장, 후창악장을 불러 내연에서 세 차례 등장하는 방식으로 출현 횟수가 많아졌다. 1887년(고종 24) 만경전(萬慶殿) 진찬에서도 세 차례 등장하였다. 운향(雲香)과 소월(小月)이 오혁오장(於赫五章)을, 소월과 산홍(山紅)이 선창악장과 후창악장을 노래하였다. 특별히 소월은 세 번, 산홍은 두 번 출연하였다.

1892년(고종 29)의 강녕전 내진찬(『고종실록』 29년 9월 25일), 1894년(고종 31)의 강녕전 내진연(『고종실록』 31년 2월 7일)에도 지속적으로 사창이 등장하였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의 궁중 연향부터는 외진연을 제외한 네 차례의 연향에서 사창이 참여하여 그 활동 무대가 넓어졌다. 1901년 5월, 1901년 7월, 1902년 4월, 1902년 11월에 설행된 대한제국기 궁중 연향에서는 내연뿐 아니라 야연, 익일회작, 익일야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연향에서 네 차례씩 참석하여 악장을 노래하였다.

변천

사창은 조선 순조대에 처음 등장하였고 왕실의 여인들이 주로 참석하는 내연에서 악장을 부르는 가창자였다. 그러나 대한제국기에 이르러서는 내연, 야연, 익일회작, 익일야연에 이르기까지 외연을 제외한 각종 궁중 잔치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 『순조기축진연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고종정축진연의궤(高宗丁丑進宴儀軌)』
  • 『고종정해진찬의궤(高宗丁亥進饌儀軌)』
  •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1.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민속원, 2005.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3, 민속원, 2005.
  • 신경숙, 「조선후기 연향의식에서의 가자」, 『국제어문』 29집, 국제어문학회, 2003.
  • 신경숙, 「조선조 외연의 <가자와 금슬>」, 『한국시가연구』 31집, 한국시가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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