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전(謝恩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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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과와 무과 급제자들이 함께 왕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며 올린 글.

개설

사은전은 일반적으로 신하가 왕의 은혜에 감사하며 올린 글을 가리켰다. 새로이 관직을 제수받거나 승진을 하였거나 혹은 특별히 왕의 은혜를 입었을 때 신하들은 이에 감사하는 글을 작성하여 올렸다. 문과와 무과와 같은 중요한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도 왕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글을 작성하여 올렸다. 문무과 급제자들이 올린 사은전이 다른 경우에 올린 사은전들과 구별되는 것은 중국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계수나무 가지를 꺾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내용 및 특징

문과는 여러 종류의 과거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험이었다. 문과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경학에 대한 이해, 문장 제술 능력, 현안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의 능력 등을 갖추어야 했고,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응시생의 출신 지역이나 혈연, 혹은 당색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평생토록 공부하여 문과에 응시한다고 해도 낙방(落榜)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급제자는 항상 소수에 불과하였다. 사람들은 어려운 고난과 과정을 거친 급제자에게 “새로이 왕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해서 신은(新恩)이라 불렀다. 신은이라는 불리는 것은 무과 급제자도 마찬가지였다. 문과와 무과 급제자들이 새로이 입은 왕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글이 바로 사은전이었다.

1434년(세종 16) 문과와 무과의 급제자들이 올린 사은전을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엎으려 생각하옵건대, 신 등은 문학을 닦아 온 미미한 존재이며, 무예를 익히던 미천한 부류로서, (중략) 본시 만인을 대적할 무인이 아니옵니다. 다만 오랫동안을 두고 햇볕 아래의 해바라기처럼 그 정성을 기울여 오던 차에, 외람스럽게도 저 구름 사이의 계수나무 가지를 꺾게 되어, 한나라 궁전에 이름이 호창(呼唱)되고, 주나라 뜰에서 용안(龍顔)을 알현하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자급(資級)을 초월하여 특이한 은총을 가하심에 놀랐더니, 음악을 갖추어 화려한 자리를 내려 주신 은택에 다시 몸을 적시었나이다. (중략) 그 은혜가 이전에 없던 것이라 저희가 감격함이 그지없나이다(『세종실록』 16년 3월 22일).”

특히 문무과 급제자들의 사은전에서 항상 언급되는 것 중에 ‘계수나무 가지를 꺾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문무과에 급제하였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이 표현은 중국 진(晉)의 극선(郄詵)이 현량과(賢良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옹주자사(雍州刺史)로 부임할 때, 황제가 접견하여 그의 학문과 재능을 칭찬하자 극선이 “계수나무 숲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꺾은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참고문헌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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