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집(思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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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652년(효종 3)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박순(朴淳, 1523~1589)의 시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전체 7권 3책으로 권1~권4는 원집이고, 권5~권7은 부록이다. 김상헌(金尙憲)의 서문에 이어 권1에는 오언 고시 5편, 칠언 고시 6편, 오언 절구 51편, 칠언 절구 213편, 권2에는 칠언 절구 167편, 오언 율시 56편, 권3에는 칠언 율시 94편, 오언 배율 9편, 칠언 배율 1편이 실려 있는데, 영평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들이 다수 들어 있다.

권4에는 계(啓) 2편, 서(書) 6편, 사제문(賜祭文) 1편, 잡저(雜著) 1편, 서(序) 1편, 기(記) 1편, 비명(碑銘) 3편, 묘지명(墓誌銘) 2편, 표(表) 2편이 일려 있다. 계는 윤원형(尹元衡)을 논척한 글이고, 서는 이이(李珥)와 이기(理氣)에 대해 논한 것이다. 권5~7은 부록으로, 이선(李選)이 지은 행장과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시장(諡狀),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신도비명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박순의 시문은 저자의 외증손 이문망(李文望)이 유고를 모아, 이경석(李景奭)에게 편정(篇定)을 부탁하고, 1652년(효종 3) 전주부윤(全州府尹)서필원(徐必遠)의 협조를 받아, 전주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5권 2책의 목판본인데, 5권은 모두 시이고 권차 없이 문(文)이 수록되어 있으며, 김상헌의 서(序)와 정홍명(鄭弘溟)·이경석(李景奭)의 발이 첨부되어 있다. 그 후 박상(朴祥)의 후손 박원응(朴源應)이 박상의『눌재집(訥齋集)』을 중간(重刊)하고, 이어서 박순의 유문(遺文)과 고사(故事) 등을 수집하여, 원집에 첨부한 뒤 홍직필(洪直弼)에게 편정(篇定)을 부탁하고, 1857년(철종 8) 전라도 관찰사김병교(金炳喬), 심경택(沈敬澤)의 협조를 받아 전주에서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7권 3책의 목판본으로, 홍직필, 김흥근(金興根), 조두순(趙斗淳), 윤정현(尹定鉉), 송달수(宋達洙), 심경택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이 중 송달수의 발문에서는 초간 이후 이선이 수집해 온 약간의 유문과 연보가 없어져 전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 하면서, 본집에 실린 송시열의 ‘월봉서원봉안문(月峯書院奉安文)’ 등의 글과 『송자대전(宋子大全)』에 실린 글을 비교 검토하였다.

서지 사항

7권 3책(중간본)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21.3×17.2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 주쌍행(註雙行), 상하향1엽화문어미(上下向1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3.2×22.3cm이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시는 당시풍(唐詩風)을 따랐다. 시의 양도 상당수에 달하고, 형식에서도 오언고시·칠언고시·칠언절구·오언절구·오언배율 등 다양하다. ‘쌍송(雙松)·소상야우(瀟湘夜雨)·춘일만흥(春日漫興)’ 등의 감흥시를 비롯해, 이이·이황(李滉)·정철(鄭澈) 등 명유(名儒) 및 승려들과 주고받은 시가 많으며, 조식(曺植)·기대승(奇大升) 등에 대한 만시(挽詩)도 있다.

계(啓)의 ‘논윤원형계(論尹元衡啓)’는 윤원형 거세의 결정적 역할을 한 계문이다. 왕실과의 척분을 기화로 전권을 휘두른 윤원형의 비리를 파헤치고, 윤원형의 축출을 건의하고 있다. 서(書)의 ‘답이이율곡서(答李珥栗谷書)’는 이이와 이기론(理氣論)을 논의한 것이다. ‘퇴계선생묘지명(退溪先生墓誌銘)’은 이황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부록의 교서는 저자의 좌의정 사직소(辭職疏)에 대한 선조의 불윤비답(不允批答)으로 이이가 찬(撰)한 것이다. 사제문은 1713년(숙종 39) 저자를 봉안한 옥병서원(玉屛書院) 사액시 숙종이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국조보감(國朝寶鑑)』·『홍재전서(弘齋全書)』·『조야기문(朝野記聞)』 등의 기록과 이황·이이·백인걸(白仁傑) 등 제가(諸家)의 서간문·상소문 등의 기록 가운데서 저자에 관한 사항을 추려서, 모은 『제가기록』이 있다.

또한 구희직(歐希稷)·성헌(成憲)·왕새(王璽)·황홍헌(黃洪憲) 등의 명(明)나라 사람이 조선에 왔다가, 당시 원접사(遠接使)로 있던 저자에게 지어 준 작별시도 있다. 이 시들은 한결같이 저자의 문장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박순은 일찍이 서경덕(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워 성리학에 박통하고, 특히 『주역(周易)』에 연구가 깊었고, 이황을 사사(師事)하였으며, 만년에 이이·성혼(成渾)·기대승과 교분이 두터웠다. 『사암집(思菴集)』은 그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이다.

참고문헌

  • 이종묵, 「포천 창옥병과 박순」, 『문헌과 해석』 제7호, 문헌과 해석사, 1999.
  • 최근묵, 「사암 박순의 역사적 위상」, 『한국사상과 문화』 제27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05.
  • 황의동, 「사암 박순의 성리학에 대한 검토」, 『한국사상과 문화』 제27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