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진(蛇渡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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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사리에 설치한 수군진영.

개설

조선전기에는 전라도 흥양현(현 고흥) 사도진에 수군진성을 축조하여 왜적을 방어하였다(『성종실록』 22년 10월 29일). 조선후기에 사도진은 섬에 정배된 유배인을 감독하고, 선박 건조용 재목을 벌목하여 전라좌수영에 상납하는 일을 맡았다(『정조실록』 18년 12월 25일). 또 전라도 흥양현 소속 내나로도와 외나로도의 송전(松田)을 관리하였다(『고종실록』 5년 10월 9일).

설립 경위 및 목적

전라도 흥양현 사도에 수군진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76년(성종 7) 흥양 사도(蛇渡)에 이미 첨절제사가 파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성종실록』 7년 12월 9일). 1491년(성종 22)에 사도성(蛇渡城)이 축성되었는데, 그 규모가 높이 15척(尺), 둘레 1,440척이었다. 사도진은 전라도 흥양에 출몰하는 왜선을 토벌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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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및 역할

15세기 사도진에 수군첨절제사가 파견되었다. 주된 임무는 흥양 앞바다에 출몰하는 왜인들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17세기 사도진에 수군첨사가 주둔하였는데, 주된 기능은 이국선(異國船)을 방어하고, 섬에 정배된 유배인을 감독하는 것이었다(『광해군일기』 14년 7월 19일)(『숙종실록』 12년 10월 11일).

18세기에 호남외유사(한 칸 띄움)서영보(徐榮輔)가 흥양 사도진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노야목(鐪冶木)을 돈으로 구입해서 전라좌수영에 상납하는 폐단을 시정하자고 건의하였다(『정조실록』 18년 12월 25일).

19세기에 사도진 소속 수군은 흥양현의 소나무 밭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고종실록』 5년 10월 9일).

변천

사도진은 조선전기에는 전라도 흥양에 출몰하는 왜선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조선후기 사도진에는 왜선을 방어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흥양현에 정배된 유배인을 감독하고, 배를 만드는 목재를 조달하는 소나무 밭을 관리하였다.

참고문헌

  • 「흥양사도진지도(興陽蛇渡鎭地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