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공인(氷庫貢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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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방민을 대신하여 한강변에서 얼음을 채취하고 이를 동빙고와 서빙고에 운송하는 역을 지던 공인층.

개설

조선시대 빙고(氷庫)는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이를 저장해 두었다가 왕실과 정부 관서에 정기적으로 지급해 주던 기구였다. 『경국대전』이 간행될 무렵에는 종5품아문이었다가 영조대 『속대전』이 간행될 무렵 6품아문으로 강등되었다. 궐내에 위치한 내빙고(內氷庫)와 두모포 일대의 동빙고(東氷庫), 그리고 용산의 서빙고(西氷庫)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내빙고는 궐내 왕실 각 전·궁에 진상하는 얼음을 보관하였으며, 동빙고는 종묘(宗廟)·사직(社稷) 이하 제향(祭享)에 쓰이는 얼음을, 서빙고는 왕실 공상용 얼음과 문무 정2품 이상 당상관에게 나누어 주는 얼음을 저장하였다.

도성 안팎의 빙고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얼음을 채취하는 벌빙역(伐氷役)과 얼음을 운반하고 나누어 주는 운빙(運氷), 반빙(頒氷)의 역을 질 사람들이 필요하였다. 조선전기에는 빙부(氷夫)에게 일을 맡기고 이들에게 반대급부로 1결의 위전(位田)을 지급해 주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고된 빙부역을 피하여 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 방민(坊民)에게 역을 지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궁가(宮家)의 노비와 같이 도성에 거주하면서도 방역에서 제외되는 자들이 나타나 역이 편중되는 문제가 발생하자 장빙미를 거두어 고립(雇立)하는 방식으로 점차 바뀌었다. 여기에 조선후기에 왕실 가족이 늘어나고 정부관서가 확대되면서 얼음의 수요 또한 증대되어 장빙역의 고립화가 진전되었다.

빙고공인(氷庫貢人)은 이처럼 도성이 행정·상업 도시로 성장하고 도성의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얼음을 전문적으로 조달해 바치던 상인이었다.

담당 직무

빙고공인은 조선후기 도성 주민에게 부과된 장빙역을 대신하던 사람들로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속하여 한강변에서 얼음을 캐고, 이를 빙고에 운송하는 역을 졌다. 또 반빙(頒氷) 시 왕실과 정부관서에 얼음을 전달하는 역도 수행하였다.

변천

18세기 들어서는 별도로 빙계를 창설하여 도성의 얼음을 도거리[都賈]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폐단을 낳았다. 또 고종대에는 각사의 하속(下屬)들이 공인들에게 값을 지급하는 것보다 얼음을 3~4배 더 받는 문제가 발생하였다(『고종실록』 21년 4월 1일). 이것은 모두 도성 내 얼음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면서 야기된 문제였다.

빙고공인 역시 다른 조달상인과 마찬가지로 갑오개혁기에 호조로 재정기구가 일원화되고 공납제가 폐지되면서 점차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대전회통(大典會通)』
  • 고동환, 「조선후기 장빙역(藏氷役)의 변화와 장빙업(藏氷業)의 발달」, 『역사와 현실』 14, 1994.
  • 김동철, 「18세기 永契의 창설과 도고활동」, 『역사와 세계』 19, 1995.
  • 오미일, 「18·19세기 새로운 貢人權·廛契 창설운동과 亂廛活動」, 『奎章閣』 10, 198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