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후주(肥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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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웅본현(熊本縣)을 일컫던 옛 지명.

명칭 유래

원래는 비전국(肥前國)과 함께 화국(火國)·비국(肥國)이었다. 화(火)와 비(肥)는 일본어발음이 같다. 화국은 고대시기 구주(九州)의 4개국 중 하나로 활발한 분화활동을 하고 있는 아소산(阿蘇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후국이 처음 문헌상에 보이는 것은 696년경이며, 7세기 중엽에 화국이 분할되어 비전국과 비후국이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내랑(奈郞)시대부터 명치(明治)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지리 구분의 기본단위였던 국(國)으로 일본의 고대~중세기의 행정구획인 5기7도(五畿七道) 중 서해도 11개국 중 하나였다. 원래는 화국(비국)의 일부였으나 646년 일본에서 조정(朝廷) 안의 혁신파가 벌인 대규모 정치 개혁인 대화개신(大化改新)을 계기로 비전국과 비후국으로 분할되면서 성립되었다. 겸창(鎌倉)시대는 안달씨(安達氏)·북조씨(北條氏)가,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국지씨(菊池氏)·대우씨(大友氏)·소이씨(少貳氏)가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수호(守護)가 되었다. 실정(室町)시대에는 구주탐제(九州探題)의 분국(分國)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비후국과 관련해서는 1428년(세종 10)부터 1504년(연산 10)까지 조선에 사람을 보내 토산물(土産物)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10년 1월 12일)(『연산군일기』 10년 3월 16일).

풍신수길(豊臣秀吉)은 비후국을 가등청정(加藤清正)과 소서행장(小西行長)에게 지배하도록 하였다. 1596년(선조 29)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황신(黃愼)이 올린 서계의 내용에 가등청정이 비후국에서 전쟁에 참전할 병사를 모집하였다는 내용이 있다(『선조실록』 29년 12월 21일).

1871년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웅본현, 팔대현(八代縣), 인길현(人吉縣)이 설치되었다. 1876년에 웅본현(熊本縣)이 되었다.

위치 비정

북쪽은 축후국(筑後國: 현 복강현(福岡縣)), 동쪽은 풍후국(豊後國: 현 대분현(大分縣))·일향국(日向國: 현 궁기현), 남쪽은 살마국(薩摩國: 현 녹아도현(鹿兒島縣))·대우국(大隅國: 현 녹아도현)에 각각 접해 있으며, 서쪽은 유명해(有明海)와 마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일본서기(日本書紀)』
  • 『속일본기(續日本紀)』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