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부인회(佛敎婦人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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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여성 불교인들이 조직한 근대적인 여성 불교 단체.

개설

개화기 이후 여성들이 신교육을 받으며 사회 진출이 시작되면서 불교계에도 여성 단체가 생겨났다. 불교부인회(佛敎婦人會)는 그 선구적인 단체로, 이 단체를 모태로 하여 1922년 조선불교여자청년회가 창립되었다. 조선불교여자청년회는 능인여자학원을 운영하는 등 1920년대 여성 계몽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해 간 대표적인 불교 여성 단체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불교부인회는 19세기 말 재가(在家) 여성 불교인들이 근대적 자각을 통해 조직한 불교 단체로 지방 각지에 이 단체가 조직되어 있었다. 순종이 1909년 서쪽 지방을 순행할 때 각 도의 공공사업비를 보충해 주기 위해 여러 사회단체에 돈을 하사하였는데, 불교부인회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불교부인회는 50원의 사업비를 받았다(『순종실록』 2년 2월 3일).

불교부인회의 자세한 활동을 전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1921년에 개최된 총회는 매우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다. 1921년 4월 수송동 각황사(覺皇寺, 현 조계사)에서 불교부인회 회장은 총회를 개최하여 "남자나 여자나 세상에 사람으로 생긴 이상에야 무엇이라도 일을 하여야 되겠으니 우리 조선 여자도 오늘부터는 서로 받들어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친절히 가르쳐 다 같이 공평하게 사회다운 사회를 만들어 사람다운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선불교여자청년회(朝鮮佛敎女子靑年會)의 설치를 결의했다. 당시 불교부인회의 회장은 서대혜였고 서기장은 이숙이었다. 불교부인회와 같은 여성 불교 단체로는 1920년 귀부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조선불교회(朝鮮佛敎會)의 조선부인회(朝鮮婦人會)가 있었다.

변천

조선불교여자청년회는 불교부인회의 총회 결의를 계기로 1922년 4월 우봉운, 김일엽, 김광호 등이 주축이 되어 여성의 교양 함양과 지식 계발, 불교 교육을 위해 창립되었다. 주요 구성원들은 여성운동에 나선 사람이 많았고 초대 회장은 우봉운이 선출되었다. 조선불교여자청년회는 경성에서 여학교를 졸업하였거나 일본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단순한 신앙생활보다는 불교의 대중화를 지향하였다. 또한 이 단체는 의식 계몽과 교육을 위해 능인여자학원(能仁女子學園)을 경영하였다. 이 학원은 초등학교 정도의 교육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로 1923년 3월에 설립되어 교장은 조선불교여자청년회의 회장 우봉운이 맡았다. 능인여자학원은 4년제 학교로 운영되어 보통학교 6학년 과정을 4년 동안 이수하는 체제였다. 처음에는 야학으로 시작하였다가 이후 주학으로 변경되어, 처녀들은 주간에, 가정주부들은 야간에 수업을 들었다. 체제가 변경되면서 원장에 이원석, 학감에 우봉운이 결정되었다.

조선불교여자청년회는 기득권층인 주지 계층의 압박과 일제의 탄압으로 1925년 이후부터 활동이 침체되었고, 이 무렵에 능인여자학원의 경영권도 일본의 서본원사(西本願寺) 경성별원으로 넘어갔다. 이후 구성원들은 근우회와 조선여성동우회 같은 사회단체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1929년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명성여자실업학원을 설립하였다. 1931년 6월경 조선불교여자청년회는 조선불교청년회가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조선불교청년여자동맹으로 전환하였다.

참고문헌

  • 김광식, 『한국근대불교의 현실인식』, 민족사, 1998.
  • 김순석, 『백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운주사, 2009.
  • 여성학교재편찬위원회, 『여성학의 이론과 실제』, 동국대학교출판부,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