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관금란관(北平館禁亂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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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북평관에 근무하면서 금란패(禁亂牌)를 차고 법에서 금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임시 관원.

개설

북평관금란관(北平館禁亂官)은 한성부에 북방 여진족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국영의 객관(客館)이었던 북평관에 근무하면서 여진족과의 밀무역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북평관은 조선초기에는 야인관(野人館)이라고 불렸으며, 동부(東部) 흥성방(興盛坊)에 있었다. 북평관금란관은 북평관 소속이었으며, 이곳의 관원은 현직 관리와 임무가 없는 직책인 산직(散職)의 경우 3품 이하와 6품 이상을 감호관(監護官)이라 통칭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20년 2월 29일).

담당 직무

보통 왜의 사신이 머물던 곳은 동평관(東平館), 북방 야인인 여진족의 사신이 머물던 곳을 북평관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외국인들과의 밀무역을 잡아내거나 술을 먹고 패싸움을 벌이는 등 분쟁을 조정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면 인삼이나 소 등은 철저한 관리 속에 무역을 허가하였는데, 비밀리에 조선인과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평관금란관으로는 보통 의금부(義禁府) 낭관(郞官)이 파견을 나왔으며, 그들은 몇 명의 하급 군사인 나장(羅將)을 데리고 날마다 주변을 돌며 비위(非違) 사건을 감독하였다. 또한 여진족이 사사롭게 무기를 휴대하거나 편전이나 화약 무기 등 조선에서 사용을 금지한 무기를 착용했을 경우 이를 압수하고 죄를 묻는 역할도 담당하였다(『성종실록』 6년 2월 17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만기요람(萬機要覽)』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