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자(副正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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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문원(承文院)과 교서관(校書館)의 종9품 관원.

개설

1411년(태종 11)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를 승문원으로 고치면서 승문원에 부정자(副正字)를 처음 설치했다. 이때의 부정자는 정8품으로 2명이었다. 이들은 정자(正字)를 도와 책[典籍]·문장(文章)의 교정을 맡았으며, 각종 편찬에도 참여했다. 문과 급제자가 처음 하는 벼슬로 기능하기도 했다.

담당 직무

부정자는 승문원과 교서관의 종9품 관직이었으므로, 정자를 도와 책과 문장을 교정하는 직무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기에는 정자와 마찬가지로 세자관속(世子官屬)인 좌·우부정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왕세자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던 서연(書筵)의 직무를 띠었을 것이다. 문과 급제자 중에서 나이 적고 글씨를 잘 쓰며 총명한 사람 10명을 선발하여, 성균권지(成均權知)·교서권지(校書權知)의 예에 따라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삼아 이문(吏文)을 익히게 하기도 했다. 부정자는 도서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세종 때 집현전에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편찬을 논의할 때나 실록청에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교서관 부정자 등이 참여한 사례가 있다.

변천

1411년 정8품 관원 2명으로 부정자를 처음 설치했다. 1417년(태종 17)에는 정8품 부정자를 저작랑(著作郞)으로 고치고, 임시로 설치한 정9품 2명과 종9품 2명을 정자와 부정자로 칭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경국대전』의 승문원과 교서관 종9품 관원이 되었다. 이런 직제는 변동이 없다가, 고종 연간에는 홍문관에도 부정자를 둔 듯하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김창현, 『조선초기 문과 급제자 연구』, 일조각, 1999.
  • 박홍갑, 「조선 초기 승문원의 성립과 그 기능」, 『사학연구』 62, 2001.
  • 오항녕, 「조선초기 문한관서의 정비와 사관제도」, 『한국사학보』 7, 1999.
  • 차미희, 「조선후기 문과 급제자의 분관」, 『한국사학보』 6,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