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치봉수(鳳儀峙烽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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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함경도 고원군(高原郡)에 속한 봉수로, 현재의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봉의치봉수는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발간을 전후한 18세기 중엽에 신설되었는데, 어떤 봉수와 대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봉의치봉수는 1810년(순조 10)에 전 함경감사조윤대(曺允大)의 건의에 의해 혁파되었다.

조직

『여지도서』 고원군 군병(軍兵) 항목에, 봉무사별장(烽武士別將) 1명이 있었다고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봉무사는 봉수군의 충원이 어려운 북도(北道)의 경우 각 지방에서 정배(定配)된 사람을 봉수군 대신 번을 서는 봉무사로 삼자는 박문수(朴文秀)의 주청에 따라 1742년(영조 18) 이후부터 봉수군의 역(役)을 담당하게 되었다(『영조실록』 17년 8월 1일).

변천 및 현황

1810년(순조 10)에 전 함경감사조윤대가 도내의 갑산(甲山)·삼수(三水)·무산(茂山)의 환곡이 많은 폐단을 아뢰고, 아울러 고원 봉의치봉수의 혁파를 진달함에 따라 혁파되기에 이르렀다(『순조실록』 10년 4월 17일).

한편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봉의치봉수의 현황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봉수는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봉현리에 위치하였는데, 그 당시의 명칭은 봉현봉수(鳳峴烽燧)였다. 터는 높이 1칸, 폭 1칸, 주위 약 10칸의 원형 토루지(土壘址) 즉 원형으로 흙을 쌓아 만들었으며, 붕괴된 곳이 있기는 하지만 원형으로 둘러싸인 누지(壘址)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김주홍, 『북한의 봉수』, 서경문화사, 2011.
  • 조선총독부,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194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