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封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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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에 제왕이 태산(泰山)에 나아가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던 의식.

개설

봉(封)은 땅을 돋우어 제단을 만들고 천신(天神)에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선(禪)은 땅을 쓸고 정결하게 한 후 지신(地神)에 제사지내는 것을 가리킨다. 고대 초기 봉선은 태산에서 거행하였는데 하늘에 대한 제사는 태산의 정상에서 거행하였고, 땅에 대한 것은 태산 아래 양보(梁甫)라는 낮은 산에서 거행하였다.

연원 및 변천

봉선에 관한 신앙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진나라 초엽에 형성되었다. 전국시대 제(齊), 노(魯)의 나라에서는 태산을 숭상하는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상 봉선을 처음으로 거행한 것은 진시황(秦始皇)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기원전 219년에 제나라와 노나라 유생들을 거느리고 태산에 나아가 봉선의 예식을 거행하였다. 그 다음으로 한(漢) 무제(武帝)가 기원전 110년에 거행하였다. 한 무제는 먼저 양보산에 도착하여 땅에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태산 아래에 도착하여 동방에 제단을 쌓고 1차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옥첩서(玉牒書)를 땅에 묻었다. 이어서 무제는 시중봉거(侍中奉車)인 자후(子侯) 곽선(霍嬗)만을 데리고 태산의 정상에 올라 두 번째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수나라 문제(文帝), 당나라 고종(高宗)과 현종(玄宗), 송나라 진종(眞宗) 등이 봉선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송대 이후 봉선은 거행되지 않았다. 봉선은 태산에 대한 산악신앙과 권력은 하늘로부터 나온다는 천명사상, 그리고 도교의 신선사상 등이 결합되어 생성되고 전개되었다. 봉선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제왕이 태산에 나아가 하늘에 보답하며, 천하의 태평을 아뢰는 의식이었다. 그리하여 황제들은 봉선을 행하고 하늘로부터 상서(祥瑞)를 구하였다. 그리나 제천의례는 당대 이후 교사(郊祀)와 원구제(圜丘祭)로 정착되면서 봉선은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조선에서는 봉선을 고대 천자의 의식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 시행을 논의하지 않았다. 다만 존호를 올리는 예를 천명을 받은 황제가 하늘에 보답하고 그 공로를 옥책에 적어 봉하는 봉선의 예식에 비유할 때가 있었다(『정조실록』 17년 11월 19일). 그리고 정조대에 정언(正言) 신약추(申若樞)가 봉선을 거행할 것을 청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정조실록』 22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