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조(奉祀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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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항구적으로 봉사하기 위하여 상속 재산을 분배할 때 별도로 설정한 재산.

개설

봉사조(奉祀條)는 제사의 봉행을 위해 마련한 재산이다. 재산 상속 시 일반 상속분과 분리하여 봉사조를 설정함으로써 봉사(奉祀)가 지속되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주자의 『가례』에서 이념적 근거를 찾을 수 있으나, 조선시대 봉사조의 운영과 봉사 관행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가족 구조 및 계승 양식과 관련된 특징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갔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봉사조를 설정하게 된 동기는 한마디로 제사의 지속이다. 봉사를 가계 계승과 연관 지어 논의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상당한 관련이 있으나, 적어도 봉사조의 설정은 그 이전에 조상에 대한 사후 봉양으로서의 제사를 지속하는 데에 중점이 있다. 즉 제사 승계법이 정비됨에 따라 적모(嫡母)의 재산에 대한 첩자(妾子)의 상속권, 전모(前母)·계모(繼母)의 재산에 대한 의자(義子)의 상속권을 인정하게 되는 분위기와 함께 봉사조는 설정되었다. 이처럼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이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것은 봉사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후손이 있더라도 그 후손이 봉사하지 않거나, 후사 없이 사망하여 봉사할 자가 없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사가 단절될 것을 우려한 것이며, 제사가 설행되더라도 봉사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한 조처로 볼 수 있다.

내용

봉사조는 다른 말로 ‘승중조(承重條)’, ‘주사조(主祀條)’ 등으로도 지칭한다. ‘봉사’는 제사를 받든다는 뜻이고, ‘주사’ 역시 제사를 주제한다는 뜻이므로 두 용어는 거의 의미가 같다. ‘승중’은 원래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죽었을 때 장손이 조부(祖父)로부터 가계를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선조에는 조상의 제사를 승계하여 봉사자가 되는 것을 통칭하여 승중이라고 불렀다. 한편 봉사조 이외에 묘에서 지내는 제사인 묘제를 위해 별도로 ‘묘위(墓位)’, 혹은 ‘묘제위(墓祭位)’를 설정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묘위는 봉사조보다 분재기상에 나타나는 빈도가 훨씬 적은 것으로 보아 묘위를 따로 설정한 경우도 있지만, 봉사조에 포함시킨 경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봉사조의 이념적 근거는 주자의 『가례』에 있다. 『주자가례』에서는 봉사자가 사당(祠堂)을 독점 상속하고 아울러 제전(祭田)을 두게 하였다. 제전은 매 감실(龕室)마다 전체 토지의 1/20을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유교 의례가 지향하는 제사는 4대 봉사이므로 결국 감실 4개의 제전을 합하면 전체 토지의 1/5이 된다.

이를 근거로 조선에도 봉사조에 대한 규정이 『경국대전』에 수록될 정도로 봉사조는 조선초기부터 공식화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재산에 대해 중자녀(衆子女)에게는 평분(平分)을 규정하였고, 여기에 덧붙여 승중자에게는 중자녀 한 명 몫의 1/5을 더하여 상속할 것이 규정되어 있다. 이는 「형전(刑典)」 사천(私賤)조에 재산 상속 규정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재산을 균분 상속하되 제사 승계자에게는 1/5을 더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균분 상속제 하에서 조선의 양반들은 돌아가며 제사 지내는 윤회봉사(輪廻奉祀)를 시행했기 때문에 특정 자식을 승중자로 지칭하기 어렵다. 따로 떼어 놓은 봉사조 재산이 제사의 소요 비용을 충당하는 데에 사용되기는 하나, 이 봉사조가 누군가가 재산 상속 시에 받을 재산이라고 보기는 어색한 것이다. 이는 『가례』를 기초로 하면서 조선의 상속 방식인 균분 상속을 규정한 데서 오는 모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 봉사조로 설정되는 재산은 대체로 토지와 노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간혹 사당과 제기(祭器), 제상(祭床) 등을 봉사조 항목에 올린 경우도 있다. 봉사조를 설정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는 조상 전래의 봉사조를 지속하는 경우가 있다. 이 밖에 상속 재산을 분급하기 전에 봉사조를 별급(別給)의 형태로 미리 주는 경우, 또는 유언으로 봉사조를 지정하는 경우도 분재기(分財記)에서 확인된다.

봉사조 재산의 특징은 종자(宗子) 등 특정인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봉사조가 특정 개인에 소속되는 재산이 아니고 가족 구속력이 강하므로, 예법(禮法)과 유언의 구속력으로 강력히 처분을 억제하였다.

변천

조상에 대한 봉사 관행은 고려의 제도가 계승된 측면이 강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봉사조가 별도로 설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재산 상속 문서에 정식으로 봉사조가 설정되는 것은 154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16세기 후반쯤에는 친족들이 주도적으로 봉사 재산을 설정하기 시작하고 17세기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친족들이 종자(宗子)와 함께 이를 관리함으로써 봉사 재산의 공적인 성격은 더욱 부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족 집단에서 종자의 위상이 강화되었으며, 나아가 시조(始祖)를 정점으로 하는 부계 친족 집단이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가례(家禮)』
  • 문숙자, 『조선시대 재산 상속과 가족』, 경인문화사, 2004.
  • 이수건 편, 『경북 지방 고문서 집성』, 영남대학교출판부, 1981.
  • 최재석, 『한국 가족 제도사 연구』, 일지사, 1983.
  • 이수건, 「조선 전기의 사회변동과 상속제도」, 『역사학보』129, 1991.
  • 정긍식, 「조선 초기 제사 승계 법제의 성립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 정긍식, 「16세기 봉사 재산의 실태」, 『고문서연구』9·10,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