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保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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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노비와 원직의 일상 업무를 보조하거나 서원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설정된 보인.

개설

향촌사회에는 서원(書院)에 적을 두고 스스로 원유(院儒)라고 부르는 사족(士族)들이 있었다. 이들은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한가한 백성을 모집해서 보노(保奴)라고 부르면서 마음대로 부렸다. 보유한 보노의 숫자에는 서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한번 얻은 보노는 서원의 재산으로 삼았다. 만일 국가에서 빼앗아 군역(軍役)으로 이관하려는 일이 있으면 반발하여, 끝내 내어 주지 않았다.

담당 직무

보노는 서원의 원직과 노비의 일상 업무를 보조하거나 서원의 경비를 충당하는 보인의 역할을 하였다.

변천

1657년(효종 8)에 이미 향촌의 사족들이 보노를 설정하여 마음대로 부리면서, 군역에 내보내지 않는 관례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보노에 대해서는 사액서원(賜額書院)이나 서원을 모방한 향현사(鄕賢祠)를 막론하고 모두 혁파하여 본거지로 돌려보내 군역에 충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건의되었다(『효종실록』 8년 6월 21일).

정부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각종 국가기관이 사사로이 양정을 모집하여 재원으로 활용하는 관습을 엄금하고 양역의 액수를 사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에 노비 명목으로 설정된 노보(奴保)들이 대거 감축되었다.

18세기 중엽에 모든 국역이 역종별로 정액화되면서 지방관청에서 역을 지는 읍 소속의 신분 및 액수도 조사되었다. 그러나 읍 소속은 다른 역종과 같이 정원수로 삭감 내지 고정되지 않고 19세기 초까지 계속 증가하였다. 서원도 지방관청 산하의 교육기관임을 주장하여 원노·원소속(院所屬)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보노를 정식의 읍소속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손병규, 「호적대장 職役欄의 군역 기재와 ‘都已上’의 통계」, 『대동문화연구』 39, 200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