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설(兵將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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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편찬된 군사 교훈집.

개설

『병장설(兵將說)』은 조선시대의 군사 교훈집으로 세조가 찬(撰)하고, 신숙주(申叔舟)ㆍ정인지(鄭麟趾)ㆍ강희맹(姜希孟) 등이 상세한 주해와 안설(按說)을 붙여, 1462년(세조 8)에 간행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세조는 일찍부터 군무에 깊은 관심을 가져, 문종을 도와 『병요(兵要)』ㆍ『진설(陣說)』ㆍ『병정(兵政)』 등을 편찬하고, 여러 병서를 주해한 바 있다. 이어서 세조는 1461년(세조 7) 「병설(兵說)」과 「장설(將說)」로 이루어진 『병장설』을 지었다. 원래는 『병경(兵鏡)』이라 하였으나, 후에 이름을 고친 것이다.

이와 같이 병법(兵法)에 조예가 깊은 세조가 1461년(세조 7) 9월에 대신들을 사정전(思政殿)에 불러 치국(治國)과 병사(兵事)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 책을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이를 받은 신하들은 그것이 병가(兵家)로서 지켜야 할 요결(要訣)이나 문장이 너무 짧고 간단하여, 쉽게 알아볼 수 없었으므로, 먼저 본문을 대자(大字)로 제시하고, 한 자 낮추어 주로 자구를 해설한 주해를 중자(中字)로 설명하여, ‘부록’이라 표시한 다음, 이와 관련된 역대 전쟁의 실제와 선인(先人)들의 논설을 첨부하였다.

1462년(세조 8)에 신숙주 등이 이 일을 마치고 전(箋)과 함께 임금에게 올렸다. 이 해에 간행된 것이 내제(內題)에 ‘어제병장설(御製兵將說)’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어제병장설』은 을해자(乙亥子)로 인쇄한 것으로서,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지 사항

1책(7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을해자본(乙亥字本)이다. 크기는 세로 27cm, 가로 18.4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조선 초기 세조가 병법의 대요를 논한 것에 신하들이 주를 달아 간행한 것으로서,

본문은 「병설」과 「장설」로 나누어져 있다. 세조가 찬한 원문은 큰 글씨로 하고, 한 호수 낮은 활자로 원문의 자구에 대한 주를 달았다. 한 장(章)이 끝난 다음에는 ‘신등문(臣等聞)’이라는 표현 아래에 그 장에 대한 전반적인 주를 실었다. 다시 그 아래 「부록(附錄)」으로 위의 본문과 관계가 있는 역대 전쟁의 실례와 앞사람들의 논설을 널리 모아 상세히 부기하였다.

내용은 병법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무경칠서(武經七書)』에서 따온 말이 많다. 실제 군사훈련이나 작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대개 “군사는 인의(仁義)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원칙을 논한 것이다.

끝에는 별도로 「병설(病說)」 항목을 두어, 군사상 병통이 될 만한 것을 경계하는 내용을 실었다. 그 내용은 「타위병처(打圍病處)」 7항목, 「행군병처(行軍病處)」 3항목, 「선전관병처 (宣傳官病處)」 5항목, 「사옹다주방병처(司饔茶酒房病處)」 6항목, 「잡류장병처(雜類將病處)」 3항목, 「대장사병처(大將師病處)」 4항목 등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는 난외에 기마병이 지켜야 할 수칙 등의 4항목을 실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병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는 점과 을해자로 인쇄한 것이라는 점 등에서 여러 가지 중요성을 지닌다.

『어제병장설』이 간행된 후인 1464년(세조 10) 세조는 최항(崔恒)ㆍ한계희(韓繼禧)ㆍ이승소(李承召) 등에게 그 주를 산정할 것을 명령하고, 강희맹(姜希孟)ㆍ임원준(任元濬)ㆍ정자영(鄭自英)ㆍ이영제(李永堤) 등에게 상고하고 조사할 것을 명령하였다. 1465년(세조 11)에 다시 「유장병법대지(諭將兵法大旨)」를 친제하였다.

그 뒤 1466년(세조 12)에 『병장설』이 다시 간행되었다. 이것은 『어제병장설』의 내용에 「유장편」과 「병법대지」의 내용이 첨가된 것이다. 이 때 첨가된 내용은 바로 1465년에 세조가 지은 것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병장설』 역시 1책으로 이루어져 있었음이 『중종실록』에서 확인되나, 당시의 것은 현재 전하지 않고 후대에 재간된 것이 보관되어 있다. 이것은 『어제병장설』의 「병설」과 「장설」 부분에서 주의 많은 부분을 간략히 했으며 「부록」은 생략하였다. 다만 「장설」에는 약주(略註)가 실려 있다.

본주ㆍ약주ㆍ장하주(章下註)는 모두 원문과 같은 크기의 활자로 인쇄되어 있으며, 주 안의 작은 주만이 작은 글씨로 되어 있다. 「유장편」은 다시 「희유제장편(戱諭諸將篇)」ㆍ「삼하편 (三何篇)」ㆍ「수로편(修勞篇)」으로 나누어져 있다. 「희유제장편」은 장수가 명령을 내리는 데 대한 내용 등의 일반론으로서, 여기에도 본주ㆍ장하주ㆍ소주가 실려 있으며 특히 소주가 많다.

「삼하편」은 “어떻게 되겠는가?”와 같은 표현으로 이루어진 일반론 3항목을 수록하였다. 「수로편」은 성명(性命)을 바로잡을 것을 논한 것이다. 「병법대지」는 병법의 요지를 간략히 논한 것이다.

끝 부분에는 「타위병처」 7조항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어제병장설』의 「병설(病說)」의 일부분을 수록한 것이다. 말미에 신숙주가 쓴 발문이 있다. 그 뒤 중종 연간인 1528년(중종 23), 간행한 지가 오래된 까닭에 구하기가 어려워 익힐 수가 없으므로, 『진서(陣書)』ㆍ『병정(兵政)』 등의 책과 함께 『병장설』을 다시 찍어 반포하자는 병조의 건의가 왕의 허락을 받았다. 이들 책의 내용 중에 세조가 친히 지은 부분이나 신숙주 등이 임금에게 바친 전문 등은 『세조실록』에도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한국의 병서 중에 간행연대가 비교적 이르고, 사용된 활자가 을해자(乙亥字: 1455)란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전기의 『진법』이나 『병장도설』이 군사 훈련과 작전의 실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병법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법의 원칙이라는 점과 임금이 지은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용되었음이 당시 실록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조선 초는 대외적으로는 남북으로 외세를 극복하고,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확립하는 상황이었으며, 이는 병서 간행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병서는 병학 자체를 정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말의 무장이자 조선의 개조였던 태조의 활약상을 반영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윤훈표, 「『병장설』의 체계적 분석과 조선 병학의 새로운 이해- 판본별 구성과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역사와 실학』 48호, 역사실학회, 2012.
  • 이명환ㆍ김흥수ㆍ김경록, 「조선시대 군사사상 연구」, 『공사논문집』 제59집 제1권, 공군사관학교, 2008.
  • 전사편찬위원회, 『병장설, 진법』, 국방부, 1983.
  • 허선도, 「진법 고(考)」, 연구보고서, 국방부,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