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순라(別巡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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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성이나 지방의 치안을 위해 중앙군과 포도청이 특별히 순찰하는 행위나 순찰하는 관원

내용

조선초기 별순라(別巡邏)는 1426년(세종 8) 도성의 도적 방지책이 마련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의 별순라는 서울의 각 방(坊)과 동(洞)에 파수군 5명을 세우고, 매 시간마다 순관(巡官)과 별순(別巡)이 검열하였다. 또한 세종대 별순총제(別巡摠制)는 궁성의 야간 순찰을 담당하였는데 순패(巡牌)를 소지해야 했고, 분실할 경우 장형과 도형에 처해졌다. 또한 도성에 머물러 있는 별순절제사(別巡節制使)가 각 경(更)에 순관을 점고하고 흥인문(興仁門)에 숙직하였다.

특히 국왕이 환궁(還宮)할 때는 특별히 국왕의 안전을 위해 도성의 치안에 각별히 대비 강화했는데, 서울의 유도관원(留都官員)과 오부관원(五部官員)이 별도의 순라군을 조직하여 궁벽한 곳과 골목을 밤새 돌면서 치안을 강화하였다.

1451년(문종 1) 야간에 활동하는 도적이 증가하자 순라군이 평상시 정해진 지역을 순찰하는 방식과는 달리 별도로 군졸(軍卒)을 동원하여 불시에 기습하는 별순법(別巡法)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이때 별순군사가 조직되면 국왕은 승지(承旨)·주서(注書)·환관(宦官)·진무(鎭撫) 가운데 특별히 관리를 선발하여 이들을 영솔하도록 하였다.

한편 조선후기 도성의 순찰은 포도청(捕盜廳)과 삼군문(三軍門)이 구역을 나누어 시행하였는데, 특별한 감찰과 경계가 필요한 지역은 어영청(御營廳)금위영(禁衛營)에서 별순라를 조직하여 파견되었다.

용례

訓鍊都監啓言 興化門軍一百名 把摠哨官各一員率領 南營北一營兩處軍各五十名 分定哨官各一員率領 輪回入直 御營廳禁衛營啓言 慶德宮宮墻外別巡邏 依乙丑年例擧行 竝可之(『영조실록』 22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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