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국(藩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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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에는 제후국, 한대에서 청대까지는 조선을 포함하여 중국에 조공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

개설

근대 이전에 중국과 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세계의 국가들은 종주국·번국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양자는 책봉과 조공이라는 틀로 형성되어 있었으나, 이 관계는 형식에 불과하였으며 실질적으로는 독립과 자주를 유지하였다. 번국은 중국의 국가에 대하여 스스로를 신하라 칭하였으나 내정과 외교는 자치(自治)하고 있었다.

내용 및 특징

근대 이전에 동아시아의 번국은 중국의 주변 지역이자 동아시아 세계의 범주였던 한반도·일본열도·베트남·티베트·몽골 등의 지역에서 존재한 국가들이었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번국은 책봉과 조공이라는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 책봉은 중국의 황제가 번국의 군주에게 봉작(封爵)을 내리는 행위였으며, 조공은 번국의 군주가 황제가 통치하는 중국적 세계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책봉과 조공으로 결합된 양국의 관계에 의하여 쌍방의 지배자들은 권력 유지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번국’에 관한 기사의 대부분이 두 나라 사이의 내정과 외교에 관한 본질적인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의례상의 차이를 강조하는 내용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종주국인 중국의 왕조가 번국의 내정에 간섭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조선과 청의 경우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국제 질서가 요동친다거나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종주국이 번국의 내정에도 간섭하였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대한 명의 내정간섭, 병자호란 직후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간섭,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간섭 등이 그런 예이다.

변천

주나라는 혈연관계에 기반을 둔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주의 천자는 자신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봉지(封地)를 주고 제후로 임명해 왕실의 울타리로 삼았다. 왕실을 호위하는 제후를 번, 제후가 다스리는 영역을 번국이라고 불렀다. 훗날 ‘번’과 ‘번국’은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군현제를 도입하면서 제후가 다스리는 번국은 사라졌다. 한(漢)이 등장한 후에 중국적 세계 질서가 성립되고 나서 번국의 대상은 중국 밖의 주변 국가로 바뀌었다. 중국은 종주국이 되고, 그 밖의 나라가 번국이 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전통 시기의 전 기간에 걸쳐 이어지다가 근대에 들어 중국적 세계 질서가 해체되는 것과 동시에 종말을 고하기에 이르렀다.

청불전쟁(淸佛戰爭)을 계기로 1884년에 월남이, 청일전쟁을 계기로 1894년에는 조선이 청국과의 번국·종주국의 관계에서 벗어났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청국이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독립 자주체제를 훼손시키는, 조선이 청국에 공헌(貢獻)하는 전례(典禮) 등은 이제부터 철저히 폐절(廢絶)한다.’는 제1조의 내용은 번국과 종주국의 관계가 폐지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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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카모토 다카시,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글로벌 시대, 치열했던 한중일 관계사 400년』, 소와당,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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