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지곡(武烈之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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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세종(世宗) 때 만든 아악곡(雅樂曲)의 하나.

개설

무열지곡(武烈之曲)은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궁중음악 중의 하나로 조회악(朝會樂) 중 황종궁(黃種宮) 11과 12에 보인다. 이 곡을 조회악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나라 주자(朱子)의 『의례경전통해』 중 『시악(詩樂)』 황황자화(皇黃者華) 3·4장의 곡조를 가져다 만들었다.

무열지곡의 악장(樂章)은 1432년(세종 14) 대제학 정초(鄭招), 참판 신장(申檣), 제학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창제되었는데(『세종실록』 14년 12월 10일), 태조와 태종의 공덕(功德)을 찬양한 사언시(四言詩)로 이루어져 있다.

환환성조(桓桓聖祖)굳세고 용감하신 성조(聖祖)께서,

수천지총(受天之龍)하늘의 총명(寵命)을 받으시어

기주납씨(旣走納氏)이미 납씨(納氏)를 패주시켰고,

우첩운봉(又捷雲峯)운봉(雲峯)에서 승리하셨도다.

의기언선(義旗言旋)외로운 기를 곧 돌리시어,

취피흉잔(取彼凶殘)저 흉잔한 무리를 토벌하여

기정무공(耆定武功)무공(武功)으로 평정하니,

동민이안(東民以安)우리 백성이 편안토다.

오혁태종(於赫太宗)아 빛나신 태종께서,

비승무열(丕承武烈)크게 무공(武功)을 계승하시어

발란반정(撥亂反正)난을 평정하여 바름으로 돌아오게 하시니,

군정서열(群情胥悅)백성의 마음 서로 기뻐하도다.

야인시징(野人是懲)야인을 징계하고,

도이분명(島夷奔命)섬 오랑캐가 복종하여

사방무우(四方無虞)사방에 근심이 없음은,

유공지성(惟功之盛)오직 공의 성함이로다.

내용 및 특징

이 악곡은 조선초기 회례연에서 왕에게 다섯 번째 잔을 올릴 때와 동지(冬至), 설날 아침인 정조(正朝), 8월과 9월의 양로연(養老宴)에서 연주되었다. 이 곡의 첫째 단 네 소절은 황황자화 제3장(황종궁 11)과 같고, 둘째 단 네 소절은 황황자화 제4장(황종궁 12)과 같으며, 이것을 2회 반복한 것이다. 그 선율과 가사는 『세종실록』과 『악학궤범』에 전한다.

무열지곡은 황황자화의 곡조를 그대로 차용한 악곡이지만, 그 가사는 바뀌었다. 선율은 황종(黃鐘)·태주(太簇)·고선(姑洗)·유빈(蕤賓)·임종(林鐘)·남려(南呂)·응종(應鐘)의 7음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선법은 황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궁조(宮調)인 황종궁인데, 이를 일명 정궁(正宮)이라고도 한다. 사설 붙이는 법은 글자 하나에 하나의 음이 붙는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이다. 곡은 황종으로 시작해서 황종으로 끝나는 점으로 보아 시작음과 종지음이 동일하며, 선율이 내려오면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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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 『악학궤범(樂學軌範)』
  •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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