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방방관(武科放榜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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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과방방의에서 무과 합격자를 부르는 관리.

개설

조선시대에 문무과의 방방(放榜)의식에서 무과 합격자를 부르는 관리를 말하였다. 창방관(唱榜官)이라고도 하였다. 1402년(태종 2)에 무과를 처음 실시한 이후 문과와 함께 최종 합격자 발표 행사를 하였다. 이를 방방의(放榜儀) 또는 창방의(唱榜儀)라고 불렀다. 그 행사에서 문과방방관(文科放榜官)은 문과 합격자의 이름을, 무과방방관(武科放榜官)은 무과 합격자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담당 직무

문무과방방의 때에 문과방방관은 근정전(勤政殿)의 동쪽 계단 아래에서 서쪽을 향하여 서고, 무과방방관은 서쪽 계단 아래에서 동쪽을 향하여 섰다. 방방의식이 거행되면, 문과방방관은 동쪽 편 계단으로 월대 위로 올라가고, 무과방방관은 서쪽 편 계단으로 올라가서 각각 자리에 나아갔다. 승지가 왕에게 합격자를 호명하는 절차를 알리면, 먼저 문과방방관이 첫 문과 합격자의 이름을 부르면 합격자가 자리에 나아간 뒤, 무과방방관이 첫 무과 합격자의 이름을 부르면 합격자가 자리에 나아갔다. 문과와 무과의 방방관은 이처럼 차례대로 모든 합격자를 호명하고 나면 각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과거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방의식을 거행하였다. 그중 무과방방관은 1402년(태종 2)에 문과의 예에 따라 처음 배정하였다. 1434년(세종 16)에는 중국의 예식에 의거하여 방방의주(放榜儀注)를 제정하였다. 이때에는 문과창방관(文科唱榜官)·무과창방관(武科唱榜官)이라고 하였다(『세종실록』 16년 3월 7일). 그러나 『세종실록』 오례의에 정비된 문무과방방의에는 문과방방관·무과방방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아울러 방방의식에서 종래 문과방방관과 무과방방관이 이동하던 동선도 달라졌다. 문종대에는 국상 중에 거행하는 방방의식을 새로이 만들었다. 하지만 무과방방관의 역할이나 자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과방방관은 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서 최종적으로 정착되어 조선말까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전시의 고증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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