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승사(妙勝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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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사신을 보내 불사 자금을 요청했던 일본 병고현의 사찰.

개설

일본 병고현(兵庫縣) 담로시(淡路市)에 있는 일련종(日蓮宗) 묘승사(妙勝寺)는 실정막부(室町幕府) 시대를 개창한 족리존씨(足利尊氏)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1494년에 조선에 사신을 보내 묘승사의 불사(佛事)를 위한 자금을 요청하였다. 조선에서는 면주(綿紬) 300필과 면포(綿布) 300필, 그리고 정포(正布) 40필 등을 도와주었다.

내용 및 특징

(1) 족리존씨와의 인연

묘승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으나 실정막부(室町幕府) 시대를 개창한 족리존씨(足利尊氏)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1336년 남목정성(楠木正成)과 신전의정(新田義貞) 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족리존씨는 구주(九州)로 달아나던 도중에 담로도(淡路島)의 앞바다에서 바람을 기다리기 위해 배를 정박하고 있었다. 그때 산 중턱에 불빛이 있는 것을 보고 부하를 거느리고 이 절에 들렀다. 당시 주지로부터 묘승(妙勝), 즉 ‘묘법(妙法)이 승리한다’는 뜻의 사찰 이름을 들은 족리존씨는 자신의 군대가 승리를 얻을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였다. 묘승(妙勝)의 ‘묘(妙)’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묘(妙)’를 가리키는데, 족리존씨는 ‘나무묘법연화경’을 소리 내서 읽으면 이길 것이라 믿고 큰 칼 1자루를 절에 보시하여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였다. 그 후 그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구주(九州)로부터 출발하여 다시 경도(京都)를 공격하던 중 지금의 병고현 신호시(神戶市)의 전투에서 남목정성을 격파하고 실정막부 시대를 열었다.

묘승사에는 족리존씨의 서명이 있는 고문서가 남아 있다. 예전에는 산명을 삼립산(三立山)이라고 불렀는데, 족리존씨의 고사와 관련하여 어태도산(御太刀山)이라고 바꾸었다. 묘승사의 정원은 강호(江戸)시대 초기 정원으로서, 큰 돌과 그 배치의 호화로움은 담로도에서 제일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600년 이상 된 큰 장목(樟木)도 남아 있다.

(2) 조선과의 관계

1494년(성종 25)에 일본 사신이 와서 묘승사가 오래도록 폐허가 되다시피 방치되어 있는데 수리할 여력이 없으므로 불사(佛事)를 위해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성종실록』 25년 4월 10일). 이에 조정에서는 면주(綿紬) 300필과 면포(綿布) 300필, 그리고 정포(正布) 40필 등을 조연(助緣)하였다(『성종실록』 25년 6월 27일).

참고문헌

  • 한문종, 「조선전기 일본의 대장경구청과 한일간의 문화교류」, 『한일관계사연구』 17,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