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주(母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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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나 막걸리의 술지게미 혹은 그 술지게미를 짜서 만든 술.

개설

청주나 막걸리를 만들고 나서 남은 술지게미를 짜서 만든 술이다. 술지게미 그 자체를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술지게미는 기근에 든 사람들이나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어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이용되었다. 간혹 왕실의 시약청(侍藥廳)에서는 대비(大妃)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모주(母酒)로 죽을 끓여서 올리기도 했다.

만드는 법

모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문헌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1924년판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이것은 술지게미를 걸러 마시는 것”이라고 적었다.

연원 및 용도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어휘사전인 『명물기략(名物紀略)』「음식부(飮食部)」에서는 “모주, 모쥬, 주재(酒宰), 다른 말로 재강(滓糠), ᄌᆡ강”이라고 한다고 적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모주를 한자로 ‘모주(母酒)’라고 적고 한글로 ‘사루재강’이라 했다.

연산군 때에는 각 곳에서 산릉(山陵)에 일을 하러 온 군인들이 병에 걸려도 의원들이 치료를 해 주지 않아 왕실에서 검찰관을 파견하여 주리고 병든 자에게 약재를 넣고 끓인 술인 자주(煮酒)와 모주를 먹이도록 했다(『연산군일기』 1년 3월 16일). 중종 때 견항진(犬項津) 공사에 중 3,000여 명을 동원했는데, 그들에게 묵은 쌀과 모주를 공급해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중종실록』 31년 2월 16일). 인조 때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자전(慈殿)에게 붕어구이[鮒魚炙]와 모주죽(母酒粥)을 올렸다. 자전이 새벽 3시까지 잘 자다가 잠을 들지 못하자 모주를 조금 올렸는데, 이것을 마시고 세 차례나 설사를 했다고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1864년(고종 1)과 1869년(고종 6)에 필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춘향전』의 이본(異本)인 『남원고사(南原古詞)』에서는 “귀신같은 아이놈이 상 하나를 들어다가 놓으니, 어사(御使)가 눈을 들어 살펴보니 모조라진 상소반(床小盤)에 뜯어먹던 갈비 한 대, 대추 세 개, 생률(生栗) 두 낱, 소금 한 줌, 장(醬) 한 종자(鐘子)에 절인 김치 한 보시기, 모주 한 사발, 면(麵) 한 그릇이 덩그렇게 놓였거늘, 남의 상(床) 보고 내 상 보니 없던 심정(心情)이 절로 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도령이 남루한 차림으로 받은 상에 모주가 오른 것으로 보아, 하찮은 사람의 상에 차렸던 하급의 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술 중에서 천품이요, 빈한한 자와 노동자의 반양식이라 없지는 못할 것이며 추운 새벽과 해 질 때에 이런 사람의 일등 가는 큰 요리라 할 것이니라.”고 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남원고사(南原古詞)』
  • 『명물기략(名物紀略)』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조재삼 지음·강민구 옮김, 『(교감국역) 송남잡지』, 소명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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