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어(蔑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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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칫과의 바닷물고기.

개설

흔히 멸치로 불린다. 멸어(蔑魚)는 여름철 생선으로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잡히며, 대개 건제품 상태로 유통되었다. 싱싱한 멸어는 회를 쳐서 먹었고, 자반이나 젓갈·식해 등을 담가 먹거나, 말려서 포를 만들기도 한다. 이외에 일제강점기에는 멸어를 이용하여 공업용 기름을 짜거나 비료 또는 사료로도 이용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멸어는 먼 바다에 살지만, 남해안에 주로 서식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김려(金鑢)가 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 의하면, 멸어는 통영·거제·진해에서 많이 생산되었고, 주로 말려서 건어물 상태로 유통되었다(『정조실록』 14년 8월 20일).

연원 및 용도

멸어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우해이어보』에는 멸아(鱴兒) 혹은 기(幾)라 하였고,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멸어의 원명(原名)은 추어(鯫魚)이고, 속명이 멸어라고 하였다.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는 이추(鮧鯫)로도 기록되었다. 이외에 멸어는 멸, 몃, 메르치, 메레치, 멧치 등과 같은 방언으로도 불렸다.

멸어는 몸이 매우 작아서 큰 것도 15㎝ 이상을 넘지 못한다. 빛깔은 청백색이며 6월 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쯤에는 북쪽으로 이동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멸어가 밝은 빛을 좋아하므로 밤에 어부들이 불을 밝혀 가지고 다니면서 멸치를 유인하여 함정에 이르면 손그물로 떠서 잡는다고 하였다.

멸어는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어 버리는 성질 때문에 ‘멸어(滅魚)’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싱싱한 멸어는 회로 먹었지만, 대개는 젓갈을 담거나 삶은 다음 건조시켰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멸어자반과 멸어를 넣어 담근 식해(食醢)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멸어자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짜지 않은 멸어를 불에 타지 않게 알맞게 볶아 낸 다음, 살짝 비벼서 부드럽게 한다. 그런 다음에 순무, 배추 흰 속통, 장, 참기름, 검은 콩을 삶아서 물기를 제거한 후, 다시마 조각과 물을 넣고 가마솥에서 6시간 정도 끓인다. 뜨거울 때 볶아낸 멸어를 넣고 골고루 섞은 후 꺼내서 항아리에 담고 간장, 볶은 참깨 등을 넣는다. 고추를 좋아할 경우 고추를 넣어서 먹으면 식사로 매우 훌륭하다고 하였다.

멸어식해를 만들려면 먼저 멥쌀밥에 엿기름과 누룩가루를 항아리에 넣고 물을 섞어 발효시킨다. 멸어는 물기를 제거한 후 햇볕과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려 잘게 썬다. 그런 다음, 멸어와 소금을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숙성시켜 먹는다.

멸어는 또한 기름을 짜거나 거름으로도 이용하였다. 멸어는 대개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때문에 길목 좋은 곳에 그물을 쳐 놓을 경우, 대량으로 포획할 수 있었다. 멸어 기름은 주로 각종 공업용 원료로 이용되었고, 남은 것은 사료나 비료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자산어보(玆山魚譜)』
  • 정문기, 『어류박물지』, 일지사, 1989(1974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