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기(望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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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의 소재지까지 갈 수 없을 때, 특정 장소에 설치한 제단에 신위를 모시고 멀리서 해당 산천 쪽을 바라보며 지내던 기고제.

개설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는 일정한 주기마다 지내는 정기제와, 기원하거나 아뢸 일이 있을 때 거행하는 부정기제인 기고제(祈告祭)로 구분할 수 있다. 망기는 그중 산천에 지내는 기고제 가운데 하나로, 해당 산천의 제단이 있는 지방까지 갈 수 없는 경우 가까운 곳에 설치한 제단에 신위를 모시고 해당 산천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내용 및 특징

망기를 지낼 때는 술잔을 올리는 헌관(獻官)이 신위 앞에 섰을 때 신위 너머의 산천을 바라보는 형식을 갖춰야 했으므로, 신위가 단(壇)의 안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의 국가 전례(典禮) 중 망기의 형식으로 거행한 의례는, ‘시한북교망기악해독급제산천의(時旱北郊望祈嶽海瀆及諸山川儀)’와 ‘구우영제국문의(久雨禜祭國門儀)’ 등이 있었다. ‘시한북교망기악해독급제산천의’는 날이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기 위해 북교(北郊)에 단을 설치하고, 큰 산과 바다와 강 즉 악·해·독과 오방(五方) 산천 등 총 19위의 신위를 모시고 지내던 제사를 말한다. 그에 비해 ‘구우영제국문의’는 비가 오래도록 그치지 않을 때 날이 개기를 빌기 위해, 도성의 사대문에서 해당 방위 산천의 신위를 모시고 지내던 기청제였다.

영조대 이후에는 왕이 직접 북교에 나아가 거행하는 기우제인 ‘친제악해독기우의(親祭嶽海瀆祈雨儀)’와, 도성이 아닌 지방의 성문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원하던 ‘구우주현영제성문의(久雨州縣禜祭城門儀)’ 등도 망기 형식으로 거행하였다.

변천

『서경(書經)』「순전(舜典)」에는 ‘왕이나 제후가 산천에 망제를 지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9주(州) 즉 전국의 명산(名山)·대천(大川)·5악(嶽)·4독(瀆)을 바라보면서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예조(禮曹)에서 올린 「기우계목(祈雨啓目)」에, 북교에서 망기를 행할 때 『문헌통고(文獻通考)』의 예에 따라 재랑(齋郞)으로 하여금 ‘운한편(雲漢篇)’을 외우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16년 6월 5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서경(書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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