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청(蔓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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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과에 속하며, 뿌리와 잎을 식용하는 무와 비슷한 식물.

개설

만청(蔓菁)은 무와 성질은 다르지만 맛이 비슷하여 비슷한 방법으로 조리하거나 대체물로 이용되었다. 보통 순무라고 하는 것이다. 순무는 겨울 동안 움에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 꺼내 먹거나, 아예 순무김치[蔓菁菹]나 동치미[凍沉]로 담가 먹거나, 말려 두었다가 순무나물을 해 먹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순무 또는 순무 요리는 일상식, 의례식은 물론 구황식으로도 이용되었다.

원산지 및 유통

순무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며, 한국에는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재배하는 약재에 순무씨[蔓菁子]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에서 순무가 많이 재배되었던 듯하다.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등을 보면, 순무씨는 주로 볶아서 기름을 짜거나 삶아 가루를 내어 복용하였다.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 순무는 기근에 대비한 식품으로 이용되었고, 일상 음식과 의례 음식을 만드는 데도 쓰였다. 태종은 한나라 선제(宣帝) 때 흉년이 들자 순무를 심고, 백성들에게 순무를 말렸다 쪄서 먹게 함으로써 기근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승정원(承政院)에서 항상 참고하도록 명했다(『태종실록』 16년 5월 7일). 이와 관련하여,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순무는 봄에는 싹, 여름에는 잎, 가을에는 줄기, 겨울에는 뿌리를 먹어서 흉년에 대비할 수 있으며, 그 씨앗도 삶아서 볕에 말려 가루 내어 물에 타 먹으면 곡식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무를 재료로 한 일상 음식으로 만청탕(蔓菁湯)이 등장한다. 생전에 순무를 즐겨 먹던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제사를 지낸 후 재실에서 살짝 잠든 아들 중종의 꿈에 나타나 “만청탕을 맛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중종이 제수로 만청탕을 준비하여 올리도록 담당 관청에 전교한 일이 있다(『중종실록』 26년 8월 15일).

순무로 담근 김치는 일상 음식으로도, 제수로도 상에 올랐다. 순무김치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기 어려우나, 순무를 소금에 절여 만드는 김치가 『요록(要錄)』에 ‘동과침채(過冬沉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깨끗이 씻은 순무를 발 위에 펼쳐 놓고 소금을 살살 뿌린 다음 항아리에 담아 물을 붓는다. 3일이 지난 뒤 건져서 다시 씻어 채반 위에 펼쳐서 잠깐 말렸다가 큰 독에 넣는다. 여기에 끓여서 식힌 소금물을 약간 짭짤하도록 독에 부었다가 익으면 먹는다고 하였다.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동치미가 보인다. 만드는 방법을 보면, 겨울에 순무 껍질을 벗겨서 그릇 안에 넣었다가 아주 추워지면 항아리에 담아 냉수를 붓고 입구를 봉해 따뜻한 방에 두고 익기를 기다린다. 맛을 보아 먹을 만할 때에 갈라서 담고 동치미 국물과 소금 약간을 넣으면 그 맛이 더욱 좋다고 하였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정월대보름 날에 반드시 먹던 묵은 나물[陳菜]의 종류 가운데 겨우내 저장해 두었던 순무나물이 들어 있다. 또한 다가올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여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던 순무 잎[蔓菁葉]이나 오이 꼭지, 가지 껍질 등을 이 날에 먹던 풍습이 있었다.

참고문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산가요록(山家要錄)』
  • 『요록(要錄)』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한국식품과학회, 『식품과학기술대사전』, 광일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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