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饅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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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가루나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한 뒤 얇게 펴서 소를 넣고 둥글게 빚어서 삶거나 찌거나 기름에 지져서 만든 음식.

개설

넓은 의미에서는 껍질[皮]에 소를 넣고 싸서 삶거나 찌거나 기름에 지져 만든 찬품의 총칭이다. 피의 재료에 따라 메밀만두, 밀만두, 생치만두, 어만두, 육만두, 동아만두 등의 종류가 있다.

만드는 법

깁체에 쳐서 만든 메밀가루로 의이죽처럼 풀을 쑨다. 그 풀에 메밀가루를 넣고 눅진하게 반죽하여 개암 낟알 크기로 떼어 빚는다. 만두소는 무르게 삶아 으깬 무와 다진 꿩고기에 간장·참기름을 넣고 볶아 잣가루·후춧가루·천초가루를 넣어 만든다. 소를 넣고 빚어 만든 만두를 새옹에다 착착 넣어 한 사람 먹을 만큼만 삶아 생강즙과 초간장을 섞어 만든 강초장에 찍어 먹는다.

꿩고기가 없을 때에는 힘줄 없는 소고기를 다져서 간장과 참기름을 합하여 볶아 소를 만든다. 만두피에는 녹두가루를 넣으면 좋지 않다. 만두소는 삶은 무, 표고버섯, 송이버섯, 석이버섯을 잘게 다지고 잣가루와 간장을 합하여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담아 볶는다. 또는 밀로 상화가루를 만들어 메밀만두소와 같이 소를 장만하여 빚어 삶아 낸다. 강초즙을 곁들이는데, 양념에 마늘을 넣는 것은 냄새가 나서 생강만 못하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쌀 한 줌을 냄비에 담아 물을 많이 부어서 쌀알이 뭉그러지도록 끓여 죽을 만들어 식힌다. 밀가루 3되를 그릇에 담고 앞서 끓인 죽을 부은 뒤 막대로 저어 콩죽처럼 만들어 놓으면 밀반죽이 된다. 칼로 깎은 누룩 5홉을 물에 담가 누룩물이 우러나오게 한다. 우러난 누룩 물에 술 1숟가락을 합하여 앞서의 밀반죽에 넣고 골고루 섞은 후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곳에 놓아둔다. 이튿날에도 앞서와 같은 방법으로 죽을 만들어 따뜻한 곳에 사흘 동안 놓아둔다. 새벽에 밭쳐서 밀반죽과 합하여 반죽한 다음 빚어서 헝겊에 밀가루를 깔고 놓아둔다. 빚은 것이 조금 부푼 듯하면 불에 안쳐서 찐다. 소는 가늘게 채로 썬 오이와 박, 삶은 무, 가늘게 찢은 석이버섯, 표고버섯, 참버섯에 단간장과 참기름을 합하여 볶은 후 잣가루와 후춧가루로 양념한다. 여름에 상화를 만들 때에는 청밀(淸蜜)로 화합하여 만든 팥[赤小豆]소를 넣는다.

연원 및 용도

1670년(현종 11)경에 나온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만두 만드는 방법으로 만두법(饅頭法)과 상화법(霜花法)이 있다. 『음식디미방』이 나왔던 시대에는 상화와 만두가 있었는데, 상화는 밀가루를 재료로 한 만두피를 발효시켜 찜통에 찐 것이고, 만두는 밀가루 또는 메밀가루를 만두피로 하여 소를 넣고 만들어 물에 삶은 것이다.

부풀린 피로 만든 것을 상화라 하고 부풀리지 않은 것을 만두라 한 기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만두(曼頭)란 말은 3세기 후반의 진대(晉代)에 처음 나왔다. “만두는 무후(武侯) 제갈공명(諸葛孔明)에서 비롯한다.” 하였다.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만두가 나온 것은 한대(漢代)이다. 한대의 만두는 밀을 재배하는 유목민족으로부터 기원한다. 중국에서 만두라고 부르는 것은 밀가루반죽을 발효시켜 고기나 채소를 소로 넣고 시루에서 둥글게 쪄낸 것을 말한다. 바로 『음식디미방』의 상화를 중국에서는 만두라 하였다.

상화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에는 쌍아(雙兒)라 했다. 이 쌍아가 고려가요에서는 쌍화(雙花)로 등장한다. 쌍아·쌍화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상화라 했다. 1609년(광해군 1) 명(明)나라 사신이 왔을 때 조반상(早飯床)에 올라간 찬품 중에 상화[床花餠, 床花]가 있다. 상화병의 재료는 밀가루, 석이버섯, 무, 연두부, 참기름, 간장, 생강, 후추, 소금, 잣, 기주말(起酒末)이다. 누룩가루로 발효시킨 밀가루반죽에 위의 재료로 만든 소를 넣고 찜통에서 쪄 낸 찐만두이다. 1700년대 이후에는 조선왕실에서도 상화란 명칭이 사라지고 만두(饅頭)가 대신하였다. 1719년(숙종 45)의 『진연의궤(進宴儀軌)』에 만두가 나오는데 그 재료가 밀가루, 생치, 연계, 돼지사태육,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금, 간장, 생강, 잣, 기주말로 상화와 같은데 만두라고 하였다. 이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상화는 보이지 않고, 부풀리지 않은 만두가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메밀가루나 밀가루반죽 피에 소를 넣고 삶거나 찐 것만을 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생치만두(生雉饅頭)는 꿩의 살을 저며서 만두 껍질로 삼고, 어만두(魚饅頭)는 생선살을 얇게 저며서 만두 껍질로 삼았다. 진찬(進饌)진연(進宴) 때 올린 만두로 1719년(숙종 45)에는 동과만두(冬果饅頭)·만두·어만두·골만두(骨饅頭)·병시(餠匙), 1827년(순조 27)에는 만두·양만두(羘饅頭)·병시, 1828년(순조 28)에는 만두·어만두·생치만두·병시, 1829년(순조 29)에는 만두·어만두·골만두·양만두·생합만두[生蛤饅頭]·병시, 1848년(헌종 14)에는 만두, 1873년(고종 10)에는 만두, 1877년(고종 14)에는 만두와 육만두(肉饅頭), 1887년(고종 24)에는 만두와 육만두, 1892년(고종 29)에는 만두·어만두·육만두·병시, 1901년(광무 5)에는 만두·어만두·육만두·병시, 1902년(광무 6)에는 만두·어만두·육만두·병시가 있다.

만두는 궁중 연향에서 왕에게 술을 헌작하기에 앞서 ‘진만두(進饅頭)’라는 의례 부분이 있을 정도로 공식적인 의례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영조실록』 42년 7월 13일). 일반 백성들에게도 특별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특히 밀가루가 귀하고 비싸 밀가루반죽 피로 만든 만두를 메밀가루반죽 피로 만든 것보다 상등품으로 쳤다. 그래서 잔칫상이나 제사상의 음식으로서 면식(麵食)의 상두(上頭)를 차지하였다.

밀가루로 만든 얇은 껍질에 소를 싸서 뜨거운 물에 끓여 그 물과 함께 만두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물만두인 병시, 맑은 장국에 밀가루피 만두를 넣어 끓이는 장국만두(만두국: 餠湯)는 특히 상두 만두에 속했다. 1849년(철종 1)에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음력 10월의 시식(時食)으로 올라갈 정도로 만두는 이미 대중화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
  • 『옹희잡지(饔𩟄雜志)』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진연의궤(進宴儀軌)』
  • 『진찬의궤(進饌儀軌)』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이성우, 『한국요리문화사』, 교문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