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덕전(惇德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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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광무 5)경 경운궁에 건립된 건물.

개설

경운궁(慶運宮: 덕수궁)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하나로, 1907년(융희 1) 8월 순종황제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다.

위치 및 용도

경운궁의 석조전 뒤쪽으로 현재의 포덕문(布德門)은 북동쪽에 있었다. 돈덕전의 ‘돈덕’은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하여 어진 이를 믿는다[惇德允元].”에서 따온 것이다. 고종황제가 신하들의 알현(謁見)을 받거나 연회를 베풀고 외국 사신을 접견할 때 사용하던 곳이었다.

변천 및 현황

처음에는 총세무사인 영국인 브라운([栢卓安, 白卓安], M. Brown)이 관장하던 해관구역 안에 해관청사의 용도로 건축되었는데, 1897년(광무 1) 건립된 대한제국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어 점차 경운궁의 영역을 확장했던 1901년 하반기에서 1902년(광무 6) 무렵에 경운궁으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3년(광무 7) 이후 ‘돈덕전’으로 명명되고, 1904년(광무 8) 경운궁의 대화재 때에도 불에 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전 황제, 일명 덕수궁전하인 고종의 탄신연을 비롯하여 각종 연회가 벌어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21년 7월에 덕수궁 관통도로가 만들어질 때까지 존재하다가 이후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현판만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규모는 길이 약 127척, 폭 약 95척, 면적은 건평 약 350평, 연평 700평의 서양식 2층 벽돌집이었다. 1층과 2층 외부를 모두 아치형 창으로 표현했고 2층에는 테라스를 설치하였으며, 난간은 오얏꽃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내부 중앙에 6개의 큰 원주(圓柱)가 있는 100평 넓이의 큰 방이 있었다. 남쪽 끝에 외문과 정문으로 나뉘어 있고 영국공사관 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이 건물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과 러시아공사관을 설계한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인 사바틴(([薩巴丁, 薩巴珍], A.I Sabatin)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법규유편(法規類編)』
  • 小田省吾, 『德壽宮史』, 李王職, 1938.
  • 홍순민, 『우리 궁궐이야기』, 청년사, 2005.
  • 김태중, 「개화기 궁중건축가 사바찐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12-7, 1996.
  • 목수현, 「대한제국기의 국가 상징 제정과 경운궁」, 『서울학연구』40, 2010.
  • 우동선, 「경운궁(慶運宮)의 양관(洋館)들」, 『서울학연구』4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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