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윤(大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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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로 화를 당한 인종의 외숙인 윤임 일파.

개설

인종은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의 소생으로 1520년(중종 15)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 뒤 1515년에 죽었다.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는 1534년에 훗날 명종으로 즉위하는 경원대군(慶原大君)을 낳았다. 이때 세자를 저주하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자 김안로는 세자를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동궁보익(東宮輔翼)’ 명분으로 득세하였다가 결국 문정왕후 폐출 음모와 관련해 1537년(중종 32) 죽음을 당하였다(『중종실록』 32년 10월 27일).

이후 왕위 승계 문제와 관련해 동궁을 비호하는 동궁의 외숙 윤임(尹任) 측과 경원대군-문정왕후-윤원로·윤원형 측 간에 대립·갈등이 시작되었다. 윤임은 제1계비인 장경왕후의 동생이었고, 윤원형은 제2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었다. 윤임 일파를 대윤(大尹), 윤원형 일파를 소윤(小尹)이라고 속칭하였고, 신료들도 서로 갈리게 되었다(『중종실록』 38년 2월 24일). 이후 왕위 승계 과정에 외척이 본격적으로 간여하게 되었다.

변천

1544년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외척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 일파가 먼저 득세하였다. 인종은 사사된 조광조의 관작을 복구하는 등 사림을 대거 등용하였다. 그러나 재위 8개월 만에 인종이 죽고 12세의 명종이 1545년 즉위하게 되자 상황은 일거에 바뀌게 되었다(『명종실록』 즉위년 7월 7일). 어린 명종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결국 을사사화의 구체적인 죄목이 불명확한 가운데 소윤은 이 사건을 통해 대윤 일파를 제거하였다.

참고문헌

  • 김돈, 『조선 전기 군신 권력 관계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 김돈,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성종·연산군·중종과 그 신하들』, 역사비평사, 2007.
  • 김우기, 『조선 중기 척신 정치 연구』, 집문당, 2001.
  • 한춘순, 『명종대 훈척 정치 연구』, 혜안, 200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