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업(大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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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수(隋)나라 양제(煬帝) 대에 사용한 연호(605년~617년).

개설

중국 수나라의 제 2대 황제인 양제가 사용한 연호이다(605년~617년).

대업(大業) 연간 동안 양제는 대내 · 외적으로 많은 정책을 실시하였다. 우선 대내적으로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신축과 대운하 공사 등을 재개하였는데, 이들 공사들이 대공사였던 까닭에 백성들의 불만은 점차 팽배해졌다. 대외적으로는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전개하였고, 이것 역시 백성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제는 돌궐과 도욕혼에 대한 공격을 성공시켜 영토를 넓혔으나, 612년~613년에 실시한 고구려(高句麗)와의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617년에 대대적인 반란이 발생하였고, 더불어 기근 및 수해 등의 자연 재해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양제의 이종 사촌형인 이연(李淵)은 이러한 혼란들을 정리하기 위하여 양제에게 그의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도록 하였다.

한편 대업 연호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성종실록(成宗實錄)』성종16년(1485년) 10월 7일조에 등장하는데, 이것은 백제(百濟)와 일본(日本)의 외교와 관련이 있다.

백제성왕(聖王)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琳聖太子)는 6세기 후반 일본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는 ‘다다량(多多良)’이라는 성씨를 창설하였고, 이 성씨는 12세기에 ‘오우치(大內)’로, 1557년에는 ‘도요타(豐田)’로 바꾸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가문은 쇼니(小二) 가문과 함께 천황의 측근으로서 7세기 초부터 한반도와의 교류에 깊이 간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오치 가문의 승려가 편지를 보내서 백제 왕대의 명호(名號)를 알려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즉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대업 연호는 수나라와는 관계없이 일본관의 관계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연대(年代) 표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