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회전(大明會典)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국 명나라의 전장제도(典章制度)를 기록한 책.

개설

『대명회전』은 명대의 제도와 행정 법규를 기록한 일종의 종합 행정 법전으로, ‘명회전(明會典)’으로도 불린다. 황제의 칙령으로 서부(徐溥) 등이 명대의 제도와 행정, 법령에 관한 내용을 종합하여 편찬하였다. 『대명회전』은 총 180권에 걸쳐 명나라 초기부터 사용하던 모든 행정 법규를 이부(吏部)・예부(禮部)·병부(兵部)·공부(工部)·호부(戶部)·형부(刑部)의 관제로 집대성하였다. 조선에서는 특히 청대의 회전인 『청회전(淸會典)』과 더불어 명대의 회전인『명회전(明會典)』을 다양하게 참조하였는데 이 중 『대명회전』은 『황명조훈』과 함께 200여 년에 걸쳐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외교적 마찰을 일으킨 책으로도 유명하다. 두 책에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친원파였던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정적이던 윤이(尹彛)·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도주한 뒤 이성계의 가계에 관해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후손이라고 전하자 이 내용이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그대로 기록됨으로써 외교적 마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명의 황실을 상대로 ‘종계변무(宗系辨誣)’ 즉 왕실[宗]의 계보[系]에 관한 잘못된 무고[誣]를 바로잡기 위한[辨] 외교적 노력을 지속했다. 조선의 종계변무는 1394년(태조 3)에 시작되어 1589년(선조 22) 일단락되었다. 1584년(명 만력 17)에 『대명회전』을 개정하면서 이 구절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중종 때 정조사(正朝使)가 새로 사온 『대명회전』에 조선의 세계(世系)가 잘못 기록되었다고 보고하는 등(『중종실록』 13년 4월 26일) 조선은 『대명회전』에 기록된 관련 내용의 귀추에 주목하고 있었다.

편찬/발간 경위

1393년(명 홍무 26) 명 태조주원장이 『당육전(唐六典)』을 모방하여 『제사직장(諸司職掌)』을 하고 간행하라는 칙령을 내려 명의 건국 과정과 함께 6부 및 황제의 칙령 등을 총괄하는 통정사사(通政使司), 감찰 기관인 도찰원(都察院), 5군의 관청인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등 명대의 행정 제도와 법률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이후 9대 황제 명나라 효종(孝宗)이 즉위한 뒤 여러 대에 걸쳐 중복되어 흩어져 있던 이 제도들을 다시 정리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학사(大學士)서부(徐溥), 유건(劉健) 등에 의해 1502년(명 홍치 15)에 『대명회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완성 직후에 곧바로 간행되지 못하다가 무종(武宗)이 1509년(명 정덕 4)에 대학사이동양(李東陽)에게 『대명회전』을 교정하여 중수하도록 명하여 다음 해인 1510년에 간행되었다. 이를 『정덕회전(正德會典)』이라 한다. 이후 신종(神宗)이 1576년(명 만력 4)에 장거정(張居正)을 총재로 삼아 홍치, 가정 때의 구본을 교정하고 증보하도록 명하여 1585년(명 만력 13)에 완성하였고 1587년(명 만력 15)에 대학사신시행(申時行) 등이 구본을 증보하여 총 282권으로 새롭게 간행하였다. 이를 『만력중수회전(萬曆重修會典)』 또는 『만력회전(萬曆會典)』이라 부른다.

서지 사항

초기에 완성된 판본은 총 180권이었으나 중수를 거쳐 1587년(명 만력 15)에 총 228권, 수(首) 2권으로 완성되었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사부(史部) 정서류(政書類)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14조의 범례 권1 「종인부(宗人府)」를 시작으로 2권부터 163권까지는 이부(吏部)·예부(禮部)·병부(兵部)·공부(工部)·호부(戶部)·형부(刑部)의 제도와 행정을 다루며 164권부터 178권까지는 제반 문직관(文職官)을, 마지막 2권은 제반 무직관(武職官)의 직무와 연혁에 대해 다룬다.

참고문헌

  • 김문식, 「조선시대 국가전례서의 편찬 양상」, 『장서각』제21집, 200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