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왕국(乃蠻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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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배기 때의 내몽골 49호쇼 중 하나.

개설

내만(乃蠻)은 원래 11세기 때부터 역사서에 등장한 부족으로, 12세기 초경 알타이산을 중심으로 부족 연합체를 형성하였다. 내만의 어원은 나이만(Naiman)으로, 여덟을 뜻하는 몽골어 ‘naim(a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나이만을 한자로 음차 표기하면서 내만이 되었다. 내만 연합체가 8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만의 영토는 동으로는 항가이(Qangγai)산맥, 서로는 알타이산 너머 자이상(Jayisang) 호에 이르렀다. 12세기 후반에 와서 두 영역으로 분열되었다. 내만은 칭기즈칸의 몽골 부족 통일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으나 1204년 칭기즈칸과 싸워 패배하였다. 내만왕자는 중앙아시아의 카라 키타이([西遼], Qar-a kitai)로 도망하였다. 이로써 내만왕국은 멸망하여 부족민의 대부분은 몽골제국에 편입되었다.

내용 및 변천

16세기 중엽부터 다얀칸의 장자인 투르볼트(Törübolud) 및 그 후예의 통치를 받다가 투르 볼트의 5대 손자인 군촉(Günčoγ)대에 와서 차하르(Chakhar)에 예속되었다. 이후 군촉은 1626년 후금에게 항복하였다. 1636년 군촉을 자삭(jasaγ) 준왕으로 삼아 내만으로 하여금 1개의 호쇼를 편성하여 조 오드(Juu od) 맹에게 예속시켜 희거구(喜擧口) 밖, 시라무렌 강과 요하 합류지 남쪽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1638년(인조 16) 조선에서 소를 사기 위하여 몽골 땅으로 성익(成釴)을 보냈는데 그가 내만왕국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성익은 심양에서 서북쪽으로 16일을 가서 오환왕국(烏桓王國)에 도달하였고, 3일 만에 내만왕국에 도달하였다(『인조실록』 16년 6월 9일). 이때 내만의 왕은 군촉이었다.

참고문헌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 А. Очир, Монголчуудын гарал, нэршил, 2008. (А. 오치르, 『몽골인들의 기원 및 족명』, 2008.)
  • Ван Мандуга, Монголын түүхийн толь, ӨМАХХ, 1999. (왕 만두가 주편, 『몽골사 사전』, 내몽골인민출판사, 1999.)
  • 이용범, 「成釴의 蒙古牛 貿入과 枝三·南草」, 『震檀學報』 28, 震檀學會,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