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궁방(內弓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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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사용하던 활이나 화살을 만들고, 보관하는 궁내의 관아.

개설

조선시대 활은 물소뿔[水牛角]로 만들었다. 물소뿔인 수우각은 궁각(弓角)·흑각(黑角)이라고 하며, 수우각을 원료로 만든 활은 각궁(角弓)·흑각궁이라 불렀다. 수우각은 15세기 말까지는 주로 중국을 통해 수입되었으나, 16세기 이후에는 동남아시아산이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다. 화살의 원료인 전죽(箭竹)은 각 도에서 진상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는 궁중에서 소요되는 활과 화살을 제작·보관하는 기관으로 내궁전고(內宮箭庫)가 있었다. 고려시대의 내궁전고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내궁방으로 바뀌었다. 1438년(세종 20) 사간원의 상소문에는 “자문〮선공감(紫門繕工監)에 내궁방을 설치하고, 환관으로 하여금 관장하게 한 지가 오래되었다(『세종실록』 20년 11월 23일)”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내궁방을 처음 설치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적어도 1438년 이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환관이 내궁방을 관장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 1438년 이후부터는 선공감이 관장하도록 하였다.

조직 및 역할

내궁방에는 활과 화살을 만드는 공장(工匠)들이 있었다. 이들을 내궁인(內弓人)·궁장(弓匠)·궁공(弓工)·내시인(內矢人)·시장(矢匠)·시공(矢工)이라 불렀다. 군기감 소속의 궁장들이 내궁방의 일을 돕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지기[庫直]인 내궁방직이 있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는 훈련도감 소속 포수와 사수가 내궁방 내시인으로 투속하기를 원하는 일이 있었다.

내궁방에서는 상현궁(上弦弓)을 비롯한 각종 활이나, 장전(長箭)·통전(筒箭)·백우전(白羽箭)·호전(虎箭) 등 각종 화살을 만들고, 보관하였다. 왕은 활이나 화살을 도총사 등 장수에게 하사하거나, 변방을 지키는 군졸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숙종 1675년(숙종 1) 4월에는 내궁방에 있는 창과 칼을 훈련원과 어영청에 지급하여 전차(戰車)를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변천

1505년(연산군 11) 5월에는 “상의원(尙衣院)·군기시(軍器寺)의 관원으로 각각 4명을 증원하여 내궁방에 근무하며 내관(內官)과 함께 보살피게 하라.”는 전교가 있었다. 내궁방에서 만드는 활의 원료인 물소 뿔은 동남아시아산이므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1698(숙종 24)에는 물소 뿔의 조달을 전담하는 궁각계(弓角契)라는 공인계가 조직되었다. 이들에게는 일본에서 수입한 구리를 공가로 지급하였다. 내궁방은 조선후기 내내 존속하였다가 1882년(고종 19) 무렵 혁파된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해 12월 29일 감생청(減省廳)에서 올린 별단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만기요람(萬機要覽)』
  • 田川孝三, 『李朝貢納制の硏究』, 東洋文庫, 1964.
  • 김동철, 「조선후기 수우각무역과 궁각계공인」, 『한국문화연구』 4, 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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