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당(南北分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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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대 후반 동인 내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당파가 갈라진 사건.

개설

1575년 조선의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이후 동인은 다시 학파상의 차이, 왕위를 이을 세자를 정하는 건저(建儲) 및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事)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입창 차이로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하였다. 남인의 핵심 인물은 유성룡(柳成龍), 우성전(禹性傳) 등이었으며, 북인의 핵심 인물은 이발(李潑), 이산해(李山海), 정인홍(鄭仁弘) 등이었다.

역사적 배경

동서분당 때는 영남학파 중심으로 동인이라는 한 당파가 형성되었지만, 영남학파 내에서도 이미 학파의 분립이 있었다. 이황을 종주로 하는 퇴계학파와 조식을 종주로 하는 남명학파의 분립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조대 중반 이황의 제자인 유성룡을 지지하는 남인과 유성룡에 선을 긋는 이발, 정인홍 중심의 북인으로 분열되었다.

발단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에는 수원현감우성전을 정인홍, 이발, 김우옹 등이 탄핵한 것을 남북분당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즉 "성전이 서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공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정인홍이 논핵하여 파직시키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동료들이 모두 불평하였는데 남북분당의 조짐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선조수정실록』 14년 2월 1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의통략』에도 우성전이 남산에 살고 이발이 북악에 살아서 남인과 북인의 호칭이 유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과

선조 중반 분열의 조짐을 보였던 남인과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로 동인 내에 이발, 최영경 등 다수의 희생자가 생겼으나, 유성룡이 이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자,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의 학자 다수가 이산해, 정인홍을 중심으로 북인을 형성하여, 유성룡, 우성전 중심의 남인에 대항하면서 분열이 본격화되었다. 남인은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여 철학과 예학 연구로 성리학의 이론적 연구에 전념한 반면, 북인은 조식과 서경덕의 사상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실천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노장사상이나 불교, 양명학에도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1599년 실록의 기록에는 "유성룡이 다시 상신(相臣)이 되자 윤국형 등이 손뼉을 치고 일어나서 구별을 일삼아 자기들에게 붙는 자를 남인(南人)이라 하고 뜻을 달리하는 자를 북인이라 하여 드디어 당쟁의 실마리를 크게 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성룡이 사당(私黨)을 부식하고 사류(士類)를 배척하는 데에 모두 국형 등이 도왔던 것입니다."(『선조실록』 32년 1월 18일)라든가, "오늘날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는 설이 있게 된 것도 모두가 성룡이 빚어낸 것이라는 것은 전하도 아시는 바입니다."(『선조실록』 32년 7월 21일)라고 하여 남북분당의 중심에 유성룡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분당으로 인해 여러 폐해가 생겨났는데, 1600년의 실록에서 사관이 "동서남북으로 분당된 이후 사람을 기용할 적에 인품이나 장단점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나와 당색이 같은가 다른가를 보고 결정하였으니 공적인 도가 어디 있는가."(『선조실록』 33년 6월 25일)라 지적한 것은 당쟁의 폐해를 잘 지적한 것이다.

남북의 분당은 광해군대 정인홍이 정국의 실세가 되어 유성룡과 대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정인홍은 스승인 조식의 문묘종사를 위해 이황을 문묘에서 출향하려고 했고, 이로 인해 남인과 북인은 치열한 정치적, 사상적 대립을 보였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당의통략(黨議通略)』
  • 강주진, 『이조당쟁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 성낙훈, 『한국당쟁사』, 한국문화사대계 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5.
  • 신병주,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1·2, 동방미디어, 2000.
  • 한명기, 『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 구덕회, 「선조대 후반(1594~1608) 정치체제의 재편과 정국의 동향」, 『한국사론』20, 1988.
  • 오이환, 「광해군 초기의 정인홍」, 『퇴계학과 한국문화』41, 2007.
  • 오이환, 「대북정권 시기의 정인홍」, 『한국사상사학』30, 2008.
  • 한명기, 「광해군대 대북세력과 정국의 동향」, 『한국사론』20,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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