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집언해(南明集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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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세종 30) 세종(世宗)의 명에 따라 남명천(南明泉)이 지은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繼頌)』을 언해하기 시작하여, 1482년(성종 13)년 완성된 책.

개설

『남명집언해(南明集諺解)』는 당(唐)나라 현각(玄覺)의 『증도가(證道歌)』 1수와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를 위정(魏靖)이 모아 편찬한 『영가집(永嘉集)』을 송(宋)나라 선사 남명천이 구마다 나누어 320수로 계송(繼頌)한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언해한 책이다. 세종 대에 일부 언해되었으며, 나머지는 성종(成宗) 대에 학조(學祖)가 마무리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448년(세종 30) 세종은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등의 불경과 함께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을 언해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에는 30여 수만이 번역이 완료되었다. 1482년(성종 13)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이 일을 완성하고자 학조에게 마저 번역할 것을 명하였고, 그 결과 『남명집언해』는 500부를가 간행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남명집』이라는 약칭은 한계희(韓繼禧)와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에서도 보이나, 가람이병기(李秉岐)가 명명한 후 보편화되었다.

서지 사항

상하 2권 2책으로 되어 있고, 책의 크기는 상권은 33.4cm×21.5cm, 하권은 33.4cm×21.6cm이다. 지질은 한자이며, 활자는 을해자 주자본이다.

각 면의 네 둘레에는 굵은 줄로 테두리가 있으며, 테두리 안쪽 한 면의 너비는 24.8cm×17.7cm이다. 그 안에 세로로 9칸이 나뉘어져 있다. 본문인 구결문은 1칸에 큰 글자로 19자가 되어 있고, 이것의 번역문은 한글 소자로 2줄씩 19자를 쓸 수 있다. 주해문의 경우는 첫 칸을 가지런히 1자씩 비우고 있으며, 한글 소자로 1칸에 2줄씩 18자를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각 면의 가운데(판심)는 상하 백구에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고, 위쪽에는 책 이름 ‘南明’과 권 표시(上·下), 아래쪽에는 쪽수가 ‘一, 十, 二十,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발문은 1면 10칸으로 나뉘어졌으며, 1칸에 소자 2줄로 19자씩 쓸 수 있으나, 그 내용은 첫 2자를 비우고 17자씩 쓰되 대두(擡頭)와 공격(空格) 방식을 써서 존대 표시하였다. ‘세종(世宗), 문종(文宗), 세조(世祖)’등 극존칭 대상의 인물들이 직접 거명될 때는 줄을 바꾸어 2자를 위로 올리는 2자 대두방식으로 적었다. 또 존대할 인물의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는 줄을 바꾸어 1자를 위로 올려 적는 1자 대두방식을, 간혹 문장의 1칸을 비우는 공격의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구성/내용

이 책의 상권에는 오용(吳庸)의 서문이 언해와 함께 실려 있고, 그 뒤 토를 단 칠언사구체의 한문송·정음번역문·정음주해문의 순서로 156수의 노래가 실려 있다. 하권은 164수의 노래를 싣고 이어서 축하하는 내용의 후서(後序)가 언해되어 있으며, 끝에 한계희와 강희맹의 발문이 있는데,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의 발문과 같다. 『증도가남명계송』·『남명계송』·『증도가계송』·『증도가』·『가가천송(嘉歌泉頌)』 등의 다른 이름이 있으나, 후대에 와서 『영가대사증도남명천선사계송』의 약칭인 『남명집』에 언해란 말을 붙여 이루어진 『남명집언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표기법상의 특징은 한자음이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으로 표기된 것이며, ‘ㅆ’, ‘ㆅ’ 등의 각자병서(各自並書)는 한자음 표기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ㅿ’, ‘ㆍ’가 쓰이고 있으며, ‘ㆆ’은 한자음에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시라’등은 보이지 않고 ‘시라’로 나타난다. 각자병서도 ‘둘짯’, ‘세짯’, ‘네짯’를 제외하면 각자로 표기되어 있고, ‘ㅆ’, ‘ㆅ’ 등의 각자병서는 한자음 표기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삽입자음 표기는 ‘ㅅ’으로 통일되었으며, 종성표기에 ‘ㅈ’, ‘ㅊ’, ‘ㅌ’, ‘ㅍ’이 보이지 않으나, ‘아도’, ‘이리라’처럼 ‘ㅿ’ 이 사용되고 있다. 뒤에 오는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될 경우 ‘ㆁ’은 ‘다’와 같이 초성으로 내려쓴 경우와 ‘으러’와 같이 ‘ㆁ’, ‘o’으로 쓴 두 가지 경우가 다 보인다. 한자음 표기에서는 ‘ㆆ’, ‘ㆁ’과 전탁음에 해당하는 각자병서 ‘ㄲ’, ‘ㄸ’, ‘ㅃ’, ‘ㅉ’, ‘ㅆ’, ‘ㆅ’이 초성에 쓰였다. 또한 이영보래의 ‘ㅭ’과 후음 ‘ㅇ’, ‘ㅱ’이 종성 표기에 쓰였다. 한자음 표기의 또 다른 특징은 한자에 독음을 달지 않고 빈칸으로 처리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밠가락’, ‘소진이’, ‘으로’, ‘믌결’, ‘로’, ‘집’, ‘스을’, ‘’, ‘여듧에’와 같이 종성이 ‘ㄱ’, ‘ㄴ’, ‘ㄷ’, ‘ㄹ’, ‘ㅁ’, ‘ㅂ’, ‘ㆁ’인 체언 뒤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가 오더라도 연철하지 않고 분철했다. 또한 수가 적기는 하지만, 종성이 ‘ㄺ’, ‘ㄼ’인 경우도 발견되는데, 이는 당시 형태소에 대한 인식이 잘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결론적으로 『남명집언해』는 연철표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분철 표기도 활발히 쓰인다는 점에서 앞선 문헌들과 차이가 있다. 부정문이 ‘어간+도 아니’형과 ‘순수국어어근+-’형의 부정형으로 ‘어근 몯-’형, ‘어간+디 몯-’형인 장형 부정문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 책에 쓰인 특이한 어휘를 들어보면, ‘고고·리(꼭지)’, ‘곡·식(곡식)’, ‘깁·옷(비단옷)’, ‘·히’, ‘나모·신(나막신)’, ‘도랑(음, 개선)’, ‘뒤좇-(뒤좇다)’, ‘-(뚫다)’, ‘머고·리(개구리)’, ‘멱(목의 앞쪽)’, ‘묏부·우리(멧부리)’, ‘밑·드리(철저히)’, ‘龍(말 모양의 용)’, ‘봇곳·갈(벚나무 껍질로 만든 고깔)’, ‘봇닳-(볶고 졸이다)’, ‘브르돋-(부르돋다)’, ‘브즐우즐(정처없이 떠다니는 모양)’, ‘비·릇(비롯됨)’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중세 한글 표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국어학 연구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영신·성호주, 「『남명천계송언해』(상·하)의 어학적 연구-15세기 후반기의 국어 연구」, 『부산여대논문집』7, 부산여자대학, 1988.
  • 박종국, 「『남명집언해』 해제」, 『세종학연구』3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8.
  • 안병희, 「中世語의 한글資料에 대한 綜合的인 考察」, 『규장각』3 , 서울대학교 도서관, 1977.
  • 이태욱, 「中世國語의 否定法 硏究」,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1996.
  • 정우영, 「<南明集諺解>의 음운 표기법과 어휘」, 『불교어문논집』7 , 한국불교어문학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