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각(煖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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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침전 또는 온돌방이 설치된 건물.

개설

난각(煖閣)은 온돌이 시설된 건물로 궁궐에서는 왕이나 왕비의 침전(寢殿)을 말한다. 특별히 2층 누각의 아래층에 설치된 온돌을 지칭하기도 한다.

변천 및 현황

조선전기에 궁궐에서 온돌방을 설치한 곳은 왕과 왕비의 침전 정도였다. 정전(正殿)과 편전(便殿)의 바닥에는 방전(方塼)을 깔고 기타 상궁과 나인 및 내시들의 처소는 마루 판방(板房)이었다. 조선전기에 온돌은 대부분 겨울철에는 환자 치료용, 여름철에는 중요한 문서를 건조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온돌 시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설치된 온돌에서는 불길이 새어 나와 목조 건물에 옮겨 붙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온돌이 쉽게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궁궐에 상궁과 나인 처소에까지 온돌이 설치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대에 창덕궁과 창경궁을 수리하면서이다(『인조실록』 2년 3월 5일). 이후 땔감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도 있었지만 이미 따뜻한 온돌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시 이전과 같이 마루방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난각이라는 용어는 『현종실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현종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살피지 못하자, 부응교(副應敎) 김만기(金萬基)가 “승지가 편전과 난각에 구애받지 말고 자주 입시하여 문서와 상소를 바치고 이에 대한 재가를 받는다면 조섭(調攝)하는 데 방해되지도 않고 사무도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올린 상소에서 나온다. 여기서 난각은 방전이 깔린 편전과 달리 온돌이 설치되어 있어 병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따뜻한 공간, 즉 침전 건물을 의미한다(『현종개수실록』 6년 1월 7일).

『정조실록』에서 보이는 난각은 주합루 아래에 시설된 온돌방을 뜻한다. 주합루는 1776년(정조 즉위)에 창덕궁 후원에 영조의 어제(御製)를 봉안(奉安)하기 위하여 건립한 건물이다. 2층에는 주합루(宙合樓)라는 편액을 걸고 어제를 봉안하고, 아래층에는 규장각(奎章閣)이라는 편액을 걸고 영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건립할 때 여름철에 어진에 스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규장각에는 온돌을 시설하였는데, 이를 난각이라 지칭하였다(『정조실록』 5년 9월 19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궁궐지(宮闕志)』
  • 『규장각지(奎章閣志)』
  • 『내각일력(內閣日曆)』
  • 『홍재전서(弘齋全書)』「동궐도(東闕圖)」「동궐도형(東闕圖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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