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산성(吉州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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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에 있는 고려 때의 석성으로 조선 선조 때 이수일(李守一)이 수축한 성.

개설

1107년(예종 2)에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9성 중 하나이다. 둘레 약 1,400m, 성벽 높이 약 5m이며 성벽 위에는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성가퀴를 두었다. 성돌은 길이 2m, 높이 0.8m 정도의 네모난 자연석을 썼다. 조선 선조 때 길주목사로 부임한 이수일(李守一)이 산성을 수축(修築)하였다.

위치 및 용도

성벽 밖에는 방어를 위해 너비 10m의 해자를 팠다. 성안에는 무기고, 식량창고, 관청 건물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헌만 남아 있다.

변천 및 현황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0년(선조 33) 이수일이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근거지를 공격하여 성채를 불태우고 야인 115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선조실록』 33년 5월 8일). 이후 1605년(선조 38) 길주목사로 부임한 이수일이 방어를 위하여 길주산성을 수축하였다. 당시 함경감사였던 이시발(李時發)은 “지형의 널찍함을 살펴보니 군마(軍馬)를 주둔시킬 수 있고 방어의 편리함으로 말한다면 적은 숫자의 군사로도 적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바닷길이 남북으로 곧게 뚫려 있으므로 군량을 운반하여 잇대어 구원하기에도 모두 편리할 듯하였습니다. 마천령 길을 거쳐 가는 자라면 반드시 이 성의 2리 안쪽을 지나야 하고, 해정로(海汀路)를 거쳐 단천(端川)으로 가는 자들도 반드시 이 성 밑의 길을 지나야 합니다. 장수 한 사람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주둔하여 지키면서 산길 여러 곳에 유격대나 복병을 많이 배치하게 한다면 저절로 양쪽 길을 방어하는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선조실록』 39년 12월 3일)라고 하여 길주산성을 수축한 이수일의 공로를 왕에게 보고하였다.

현재 길주산성의 서쪽 성벽은 기초 부분에 놓았던 성돌만이 남아 있고, 동쪽과 북쪽 성벽은 높이 1.5m 정도만 남아 있다. 남쪽은 모두 무너져 흔적이 없다.

형태

산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한 개씩 문루가 있는 성문과 암문 세 개를 두었는데, 남문과 서문은 문의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고 동문과 북문은 네모난 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동문을 정양루, 서문을 진삭루, 남문을 백승루, 북문을 기북루라 하였다.

참고문헌

  • 『충주의 인물』, 충주시·충주대학교, 2003.
  • 최일성, 「충무공 이수일 장군」, 『중산정덕기박사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 호서사학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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