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성(金城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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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담양과 순창의 경계를 지키던 산성으로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렸음.

개설

금성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에 파괴된 성곽을 개축하였으며 이후 효종 때에 중수하여 중요한 병영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치 및 용도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해발 603m)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변천 및 현황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조선시대 들어 1409년(태종 9)에 개축하였다(『태종실록』 10년 2월 29일).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으며 1622년(광해군 14)에 내성 안에 대장이 머무는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인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1994년부터 성곽 복원사업에 착수하여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을 복원하여 외남문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하였다.

형태

산성의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 미터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담양군지』, 담양군지편찬위원회, 1980.
  •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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