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金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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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나 석재에 새겨진 문자 자료.

개설

본래 청동기나 철기 등 금속 기물에 새겨진 금문(金文)이나 비(碑), 묘지(墓誌), 각석(刻石), 조상기(造象記), 마애(磨崖) 등 석재에 새겨진 석문(石文)을 말한다. 하지만 그 범위가 확대되어 거북이 배 껍데기와 동물 뼈에 새겨진 갑골문(甲骨文)이나 비단에 쓰인 백서(帛書), 죽간(竹簡)과 목독(木牘), 벽돌이나 와당에 새겨진 문자들, 신용의 징표로 사용된 인장의 문자, 고분이나 칠기 등에 쓰인 글씨 등 사료적 가치가 있는 모든 문자 기록 자료를 포함하기도 한다.

내용 및 특징

금속이나 석재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자를 기록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나, 종이 발명 이후에는 보존의 항상성과 관련하여 특수한 목적으로 쓰였다. 이처럼 금석은 ‘문자’를 ‘기록’한 재료이다. 금석에 쓰인 문자의 연원과 변화 그리고 그 문장의 뜻을 헤아려 당시의 사회와 문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을 ‘금석학’이라 하고, 이 학문의 연구 대상인 금석문은 역사적·문학적·예술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금석학의 문을 열었다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는 “금석은 일편린(一片鱗)이라도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역사를 기록한 사승(史乘)보다 낫다.”고 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금석학의 효용성은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것 외에도 문자의 변천 과정을 밝히는 문자학 연구의 한 방편으로뿐만 아니라 서예의 측면에서는 옛 글자의 형태를 응용하여 예술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금석문은 대체로 공덕이 있는 사람의 업적을 돌에 새겨 선양하는 ‘비문(碑文)’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고(『선조수정실록』 17년 7월 1일) (『숙종실록』 27년 3월 4일), 금석에 새긴 글씨, 즉 전서(篆書)·예서(隸書)·해서(楷書) 등의 서체(書體)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철종실록』 7년 10월 10일).

참고문헌

  • 김정희, 『완당전집』, 민족문화추진회, 1994.
  • 施蟄存, 『금석총화』, 중화서국,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