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경(根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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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먼저 경작한 작물을 수확한 다음 그 그루 자리를 갈아엎고 다른 작물을 경작하는 재배 방식.

개설

근경(根耕)은 말 그대로 뿌리를 갈아준다는 것인데, 앞 작물의 그루를 갈아낸 뒤 다음 작물을 경작한다는 점에서 ‘그루갈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개 가을에 보리를 파종하고, 봄여름 사이에 보리를 수확한 다음, 밭에 남아 있는 보리 그루 밑부분을 갈아엎어 준다. 그런 다음 콩이나 조와 같은 다른 밭작물을 파종하여 경작한다. 근경을 하면 밭에서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16세기에 근경이 널리 보급되면서 1년 2작 방식의 밭작물 경작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전기의 근경은 주로 맥(麥)농사에서 이루어졌다. 『농사직설』의 작물경작법에서 양맥(兩麥)을 중심으로 한 근경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가을에 양맥(兩麥) 즉 보리와 밀을 파종하여 재배하고 이듬해 봄여름 사이에 양맥을 수확한 다음 다른 작물을 근경으로 재배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양맥과 함께 근경을 할 수 있는 작물로는 오곡 중에 늦게 파종해도 수확이 가능한 대두(大豆)와 소두(小豆)만이 해당되었다. 또한 깨 종류인 호마(胡麻)의 경우 굉장히 비옥한 땅이어야만 양맥 다음으로 근경 재배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양맥의 근경으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조선전기의 근경법은 서(黍)·두(豆)·속(粟)을 경작하고 이어서 양맥을 지은 다음 계속해서 대두·소두를 경작하는 방식, 양맥 다음에 속을 다시 경작하는 방식 등으로 이루어졌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이 되면 밭작물을 근경하는 데 별다른 제약조건이 부가되지 않았다. 고상안이 17세기 초반이 지은 『농가월령』을 보면 근경과 더불어 간종(間種)을 실행하는 데 별다른 조건이 없었다. 간종의 경우 『농사직설』에서는 전소자(田少者) 즉 땅이 많지 않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방식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농가월령』 이후의 한전(旱田)에서 근경과 간종은 일반적인 경작형태가 되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이 되면 조선의 밭작물 재배 방식은 1년 2작의 일반화라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1년에 2번 농사짓는 방식이 일반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근경과 간종 방식이 보편화되었다는 점, 시비법의 발달이 나타났다는 점 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변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근경법이 일반화되면서 조정에서는 한전에는 급재(給災)를 내려주지 않는 원칙을 정해서 실행하였다. 급재란 재해를 입은 논밭에 세금을 면제해주던 제도였는데, 조정의 입장은 한전에서는 1년에 재경(再耕) 즉 두 차례에 걸쳐 두 가지 작물을 경작하기 때문에 급재하지 않아도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재해를 당해 수확이 없을 경우 급재를 내려주어 전세(田稅) 등을 감면하는 수전(水田)의 경우와 다르게 처리한 것이다.

조선의 중앙 지배층은 한전에서 1년에 1번 수세(收稅)하는 것이 농민들에게 내려주는 혜택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당시의 부세체제가 한전에서 생산된 소출량을 근거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한전의 결부수(結負數)에 의거하여 세액을 산출하여 부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근경과 간종으로 1년 2작하는 한전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여 1년에 2번 세액을 부과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참고문헌

  • 『농사직설(農事直說)』
  • 고상안(高尙顔) 『농가월령(農家月令)』
  • 신속(申洬), 『농가집성(農家集成)』
  • 김용섭, 『조선후기 농학사연구』, 일조각, 1988.
  • 민성기, 『조선농업사연구』, 일조각, 1988.
  • 이호철, 『조선전기 농업경제사』, 한길사, 1986.
  • 염정섭, 『조선시대 농법 발달 연구』, 태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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